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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화총사 칼럼] 김은숙 작가의 “십장생도 를 바라보며”

 - 학이 날아오르는 동안에도 변하지 않는 질문으로...

K-민화 강경희 기자 |  십장생도는 오래된 그림이다. 그러나 동시에, 언제나 가장 새로운 그림이기도 하다. 김은숙 작가의 십장생도 앞에 서면 우리는 먼저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 이 그림에는 해와 달이 있고, 소나무와 학이 있으며, 물결과 바위가 있다. 인간은 등장하지 않지만, 인간이 가장 오래 바랐던 소망은 화면 전체에 가득 차 있다. 오래 살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 오래 ‘바르게’ 살고 싶다는 염원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소나무와 학의 관계다. 소나무는 뿌리를 깊게 내리고, 학은 하늘을 난다. 하나는 움직이지 않고, 하나는 쉼 없이 이동한다. 그러나 둘은 같은 장면 속에 공존한다. 이것이 십장생도의 세계관이다. 멈춤과 비상의 공존, 땅과 하늘의 합일. 김은숙의 십장생도는 이 오래된 상징을 과장 없이 정제된 화면으로 다시 꺼내 놓는다.

 

달빛 아래 날아오르는 학들은 군무를 이루되 혼란스럽지 않다. 각자의 방향을 유지하면서도 전체의 흐름을 해치지 않는다. 이는 장수의 비밀이 개체의 힘이 아니라 질서에 대한 존중에 있음을 암시한다. 오래 산다는 것은 오래 버틴다는 뜻이 아니다. 오래 살아도 흐트러지지 않는 태도, 그것이 이 그림이 말하는 장수다.

 

바위와 물결 역시 중요하다. 바위는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은 끊임없이 흐른다. 그러나 물은 바위를 파괴하지 않고, 바위는 물길을 막지 않는다. 이 조용한 공존의 풍경은 오늘의 사회가 잊고 있는 미덕을 떠올리게 한다. 빠른 변화 속에서도 지켜야 할 기준이 있고, 단단한 신념 속에서도 흘러야 할 여유가 있다.

 

김은숙 작가의 십장생도는 장식을 위한 길상화가 아니다. 이 그림은 삶의 태도를 묻는 그림이다.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시간 속에 살 것인가를 묻는다. 십장생이란 결국 열 가지 대상이 아니라, 열 가지 삶의 자세다.

 

지금의 사회는 숫자로 장수를 계산한다. 평균 수명, 기대 수명, 건강 수명. 그러나 민화가 말하는 장수는 다르다. 그것은 관계의 지속이며, 자연과의 합의이며, 욕망을 절제하는 능력이다. 김은숙의 십장생도는 그 사실을 말없이 증명한다.

 

이 그림 앞에서는 누구나 잠시 말수가 줄어든다. 설명하려 들수록 그림은 멀어지고, 조용히 바라볼수록 의미는 깊어진다. 십장생도가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그림은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시간을 건네준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어떤 장수를 살고 있는가. 김은숙의 십장생도는 오늘도 그 질문을 조용히 걸어두고 있다. 해와 달이 바뀌고, 학이 날아오르는 동안에도 변하지 않는 질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