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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총사 칼럼] 고일민 작가의 '수壽'가 말하는 "K-민화의 생명 서사"

- 오래 산다는 것의 다른 이름

K-민화 이존영 기자 | K-민화에서 ‘수壽’는 숫자가 아니다.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한 응답이다. 고일민 작가의 '수壽'는 이 한 글자를 시간의 기록이 아니라 생명의 합창으로 풀어낸다.

 


작품 속 ‘壽’자는 더 이상 문자에 머물지 않는다. 글자의 획마다 물결이 흐르고, 물고기가 헤엄치며, 거북이 천천히 시간을 건넌다. 꽃은 피고 새는 깃을 고른다. 이 모든 생명은 각자의 속도로 존재하지만,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장수는 단일한 힘이 아니라 공존의 결과임을 이 작품은 조용히 말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수’의 구조를 해체하지 않으면서도, 그 내부에 우주를 담았다는 점이다. 파도는 생의 역동을, 거북은 인내와 지속을, 물고기는 번성과 순환을 상징한다. 여기에 꽃과 과실, 새의 형상이 더해지며 ‘살아 있음’의 결이 촘촘해진다. 장수는 정체가 아니라, 끊임없는 관계 맺기라는 메시지가 분명해진다.


색채 역시 과시적이지 않다. 검은 바탕은 깊이를 만들고, 그 위에 얹힌 색들은 각자의 몫만큼 빛난다. 이는 오래 산다는 것이 요란한 성취의 나열이 아니라, 차분한 누적임을 환기한다. 세월은 소리 없이 쌓이고, 그 위에 생은 단단해진다.


오늘 우리는 ‘수’를 욕망한다. 그러나 그 욕망은 종종 불안에서 비롯된다. 더 오래 버티기 위해, 더 많이 쌓기 위해. 고일민의 수壽는 그 조급함을 내려놓게 한다.


장수란 시간을 붙잡는 일이 아니라, 시간과 화해하는 일이라고.

 

이 작품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오래 산다는 것은 오래 남는 것이 아니라, 오래 흐르는 것임을.


작가 노트 | 고일민
수壽는 한자 ‘壽’의 조형 안에 물, 동물, 식물의 상징을 담아 장수의 본질을 생명의 순환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장수를 정지된 상태가 아닌, 관계와 공존이 이어지는 과정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이 그림은 오래 사는 소망이 아니라 잘 살아가는 태도를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