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화총사 칼럼] 조경선 작가의 '일월오봉도'를 읽다.
K-민화 이성준 기자 | 이 그림 앞에 서면 먼저 고요한 질서가 다가온다. 요란한 기교도, 감정을 앞세운 서사도 없다. 대신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오래된 약속처럼 견고한 균형이다. 조경선 작가의 '일월오봉도'는 ‘왕의 병풍’이라는 익숙한 틀을 빌려, 그보다 훨씬 근원적인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누가 중심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중심인가라는 질문이다. 일월오봉도는 본래 권력의 상징이었다. 해와 달, 다섯 봉우리, 소나무와 물이 질서는 왕을 우주의 중심에 놓기 위한 시각적 장치였다. 그러나 조경선의 화면에서 왕은 사라진다. 대신 남는 것은 질서 그 자체다. 위와 아래가 뒤집히고, 현실과 반영이 맞물리며, 하늘과 땅은 서로를 비춘다. 중심은 비어 있고, 그 자리에 우주의 리듬이 놓인다. 특히 수면水面을 가로지르는 반복의 파동은 인상적이다. 겹겹이 쌓인 물결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시간의 층위처럼 읽힌다. 흐르되 무너지지 않고, 반복되되 지루하지 않다. 이는 민화가 가진 가장 큰 미덕과 질서를 통한 안정을 현대적으로 번역한 결과다. 자연은 요동치지만, 그 요동 안에는 언제나 법칙이 있다. 색의 선택 또한 치밀하다. 짙은 남색의 하늘, 절제된 황토와 녹청, 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