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화 이성준 기자 | 이 그림 앞에 서면 먼저 고요한 질서가 다가온다. 요란한 기교도, 감정을 앞세운 서사도 없다. 대신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오래된 약속처럼 견고한 균형이다. 조경선 작가의 '일월오봉도'는 ‘왕의 병풍’이라는 익숙한 틀을 빌려, 그보다 훨씬 근원적인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누가 중심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중심인가라는 질문이다.
일월오봉도는 본래 권력의 상징이었다. 해와 달, 다섯 봉우리, 소나무와 물이 질서는 왕을 우주의 중심에 놓기 위한 시각적 장치였다. 그러나 조경선의 화면에서 왕은 사라진다. 대신 남는 것은 질서 그 자체다. 위와 아래가 뒤집히고, 현실과 반영이 맞물리며, 하늘과 땅은 서로를 비춘다. 중심은 비어 있고, 그 자리에 우주의 리듬이 놓인다.
특히 수면水面을 가로지르는 반복의 파동은 인상적이다. 겹겹이 쌓인 물결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시간의 층위처럼 읽힌다. 흐르되 무너지지 않고, 반복되되 지루하지 않다. 이는 민화가 가진 가장 큰 미덕과 질서를 통한 안정을 현대적으로 번역한 결과다. 자연은 요동치지만, 그 요동 안에는 언제나 법칙이 있다.
색의 선택 또한 치밀하다. 짙은 남색의 하늘, 절제된 황토와 녹청, 그리고 해와 달의 명확한 대비는 감정을 자극하기보다 정신을 맑게 한다. 이 색들은 ‘화려함’이 아니라 집중을 요구하는 색이다. 오래 바라볼수록 화면은 점점 조용해지고, 보는 이의 호흡 또한 느려진다.
이 작품에서 소나무는 과장되지 않는다. 봉우리 또한 위압적이지 않다. 모두가 자기 자리를 지키며, 넘치지 않고 모자라지 않는다. 이는 자연에 대한 관찰이자, 인간 사회에 대한 은유다. 중심을 차지하려는 욕망이 사라질 때, 비로소 전체는 안정된다는 메시지를 조경선 작가의 '일월오봉도'는 말없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오늘의 시대는 중심을 놓고 끊임없이 다툰다. 권력, 여론, 시선, 알고리즘의 중심. 모두가 그 자리에 서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 그림은 조용히 다른 답을 내놓는다. 중심은 비워둘 때 가장 강하다고. 그 자리에 개인이 아닌 질서가 놓일 때, 세계는 오래 간다고.
그래서 이 일월오봉도는 왕의 병풍이 아니다. 사무실에도, 거실에도, 사찰에도 어울리는 그림이다. 누구를 위에 두기 위한 그림이 아니라, 모두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조경선 작가의 '일월오봉도'는 묻지 않는다.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라고.
대신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서 있지 않아도, 세계는 이미 균형을 이루고 있다.”
k-민화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이 그림처럼, 지금의 혼란 속에서 오히려 더 또렷해지는 질서의 언어다.
그리고 그 언어는 오늘도 유효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