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화 이성준 기자 | 이 그림 앞에서는 누구도 서두르지 않게 된다. 노지영 작가의 '화조도'는 한 계절의 풍경을 보여주는 데서 멈추지 않고, 생명이 머무는 방식을 조용히 들려준다. 화면을 가득 채운 매화 가지와 꽃, 그리고 저마다의 자리를 지키는 새들은 ‘움직임’보다 ‘공존’을 먼저 말한다.
화조도는 민화에서 가장 인간적인 장르다. 왕도, 신선도, 호랑이도 아닌 꽃과 새. 일상의 풍경이자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자연의 언어다. 그러나 노지영의 화조도는 단순한 길상吉祥의 나열이 아니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하나의 나무가 서 있고, 그 나무를 기준으로 수많은 생명이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지며도 질서를 잃지 않는다.
나무의 줄기는 굽이치되 흔들리지 않는다. 세월의 흔적처럼 패인 옹이와 뒤틀린 가지는 생의 굴곡을 닮았고, 그 위에 핀 매화는 시련 이후에 오는 단단한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꽃은 만개했지만 과시하지 않고, 새들은 날지만 소란스럽지 않다. 모두가 자기 몫의 봄을 살고 있을 뿐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새들의 배치다. 까치, 제비, 원앙, 이름 모를 작은 새들까지 이들은 같은 방향을 보지 않는다. 어떤 새는 날고, 어떤 새는 쉬며, 어떤 새는 서로를 바라본다. 이는 하나의 메시지로 읽힌다. 같은 계절을 살아도, 삶의 자세는 서로 다르다는 것. 그 다름이 충돌이 아니라 풍경이 되는 순간, 그림은 비로소 완성된다.
색채 또한 절제되어 있다. 금빛 바탕은 화려함을 위한 장식이 아니라, 모든 생명을 감싸는 시간의 배경처럼 느껴진다. 그 위에 얹힌 꽃과 새의 색은 선명하지만 튀지 않고,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다. 이는 민화가 지닌 고유의 미덕의 조화 속의 다양성을 충실히 계승한 결과다.
노지영 작가의 화조도는 말하지 않는다. “복을 받으라”고 직접적으로 요구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렇게 속삭인다. 이미 충분히 살아 있고,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보는 이의 마음에도 봄은 자연스레 스민다.
오늘의 사회는 늘 빠르다. 성과를 증명해야 하고, 소리를 내야 존재가 인정된다. 그러나 이 그림은 정반대의 태도를 보여준다. 조용히 있어도 괜찮다. 함께 살아도 충분하다. 이것이 이 화조도가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깊은 위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장식이 아니다.
집 안에 걸리면 풍경이 되고, 마음에 걸리면 태도가 된다. 꽃과 새를 그렸지만, 결국 사람의 삶을 비추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노지영 작가의 '화조도'는 오늘도 말없이 피어 있다.
그리고 그 앞에 선 우리는, 잠시 잊고 있던 질문을 다시 떠올린다.
나는 지금, 어떤 자세로 이 계절을 살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