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화 이존영 기자 | 일월오봉도는 왕의 뒤에 놓인 그림이었지만, 그 본질은 권좌가 아니라 질서의 중심이었다. 이미형 작가의 '황금일월오봉도'는 이 오래된 도상을 ‘황금’이라는 선택으로 다시 세운다. 금빛은 장식이 아니라 선언이다. 흔들리는 시대에 중심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답변이다.
검은 바탕 위에 떠오른 원형의 세계는 닫힌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집중된 우주다. 해와 달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균형을 이룬다. 산은 높되 과시하지 않고, 물은 흐르되 넘치지 않는다. 모든 요소는 자기 몫의 자리를 지키며 침묵의 합의를 이룬다. 이 합의가 바로 나라의 기틀이었고, 오늘의 삶에도 필요한 기준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 금빛은 ‘부’의 상징이 아니라 시간의 응축으로 읽힌다. 수없이 겹친 선과 결 위에 올라앉은 금은, 빠른 성취가 아닌 오래 견딘 결과의 색이다. 검은 바탕은 빛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대비가 아니라, 빛이 태어나기까지의 밤이다. 밤을 통과한 빛만이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화면은 말없이 증명한다.
원형 구도는 시작과 끝을 지운다. 왕의 자리는 비어 있고, 대신 자연의 순환이 자리를 채운다. 이는 권위의 공백이 아니라, 권위의 재정의다. 중심은 한 사람의 뒤가 아니라, 모두가 공유하는 질서에 있다는 민화의 오래된 지혜가 되살아난다.
오늘 우리는 중심을 잃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황금일월오봉도'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중심을 세울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해와 달을 동시에 품고, 높음과 낮음을 고르게 받아들이며, 흐름을 존중할 용기가 있는가.
이 그림은 화려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묵직한 기준을 요청한다. 빛으로 다시 세운 중심, 그것이 K-민화가 오늘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단단한 언어다.
작가 노트 | 이미형
'황금일월오봉도'는 전통 일월오봉도의 상징 체계를 바탕으로, 금빛과 원형 구도를 통해 중심과 질서의 의미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황금은 장식이 아닌 시간의 축적이며, 검은 바탕은 빛을 품은 밤의 깊이다.
이 그림은 권위의 표상이 아니라 공유되는 기준으로서의 중심을 이야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