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화 강경희 기자 | 죽필과 혁필 또한 K-그라피의 본질적 영역이다. 대나무를 깎아 결기로 찍는 죽필은 수행과 절제의 미학을 담고, 가죽 붓으로 속도와 리듬을 살리는 혁필은 소통과 확장의 언어가 된다. 이 두 붓은 한국적 필법의 깊이와 역동성을 함께 보여주며 K-그라피를 전통에서 세계로 이끄는 양대 축을 이룬다.

전통 서예의 세계에는 서로 닮았으나 전혀 다른 두 갈래의 붓이 있다. 하나는 죽필竹筆이고, 다른 하나는 혁필革筆이다.
둘 다 ‘붓’이라 불리지만, 이 두 도구는 쓰는 방식도, 담아내는 정신도, 향하는 방향도 다르다. 죽필과 혁필의 차이를 이해하는 일은 곧 전통 예술이 어떻게 수행의 길과 소통의 길로 나뉘어 발전해 왔는지를 읽는 일이다.
죽필, 마음을 찍는 도구, 죽필은 대나무를 깎아 만든다. 털이 없고, 먹을 머금지도 않는다. 그래서 죽필의 획은 부드럽지 않다. 오히려 거칠고 단호하며, 한 번 그으면 되돌릴 수 없다.
이 도구 앞에서는 망설임이 곧 실패가 된다. 죽필 서예는 기술보다 태도를 요구한다. 손의 떨림은 곧 마음의 흔들림이고, 획의 기울기는 곧 정신의 방향이다.
그래서 죽필은 오랫동안 선승과 수행자들의 도구였다. 글씨를 쓰기 위해 붓을 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린 뒤에야 비로소 한 획을 허락받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죽필은 말하지 않는다.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드러낸다.
혁필, 붓이 춤추는 도구혁필은 가죽으로 만든 붓이다. 부드럽고 탄성이 있으며, 속도와 각도에 따라 형태가 급격히 변한다. 한 획 안에 굵기와 방향, 리듬과 속도가 동시에 담긴다.
혁필은 본래 시연과 공연의 도구로 발전했다. 사람들 앞에서, 짧은 시간 안에,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글자를 써내야 했다. 그래서 혁필에는 과감한 생략과 극적인 동작, 시각적 쾌감이 있다.
혁필은 관객과 호흡한다. 붓이 움직이는 순간, 보는 이의 시선과 감정도 함께 움직인다. 전통이 무대 위로 올라온 순간, 혁필은 가장 현대적인 붓이 된다. 두 붓의 결정적 차이 죽필과 혁필의 차이는 단순히 재료의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예술이 향하는 방향의 차이다. 죽필이 내면으로 향한 붓이라면 혁필은 세상으로 향한 붓이다. 죽필은 고요한 방 안에서 한 사람을 완성시키고, 혁필은 열린 공간에서 많은 사람을 연결한다.
하나는 침묵 속에서 깊어지고, 하나는 움직임 속에서 확장된다. 우열이 아닌 역할의 차이 죽필이 더 고귀하거나, 혁필이 더 대중적인 것은 아니다.
이 둘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분업 관계에 가깝다. 죽필이 전통의 뿌리를 지키는 동안, 혁필은 전통의 가지를 넓힌다. 죽필이 정신의 깊이를 책임진다면, 혁필은 전통의 생존력을 책임진다.
오늘날 전통 예술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깊이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고, 속도만으로는 오래갈 수 없다. 전통은 하나의 붓이 아니라, 두 개의 손이다
죽필과 혁필은 결국 한 몸의 두 손과 같다. 한 손은 안으로 모으고, 다른 한 손은 밖으로 펼친다. 이 두 손이 함께 움직일 때, 전통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가 되며, 현재를 넘어 미래로 간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죽필만의 고고함도, 혁필만의 화려함도 아니다. 고요하게 깊어질 줄 아는 전통, 그리고 당당하게 보여줄 줄 아는 전통. 그 사이에서, 붓은 다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