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화 강경희 기자 | 조혜선 작가의 ‘왕물도’는 전통 책거리·기명절지의 계보 위에 서서, 지식·권위·우주 질서를 한 화면에 집약한 대작이다. 화면 중심의 장엄한 붉은 장은 왕좌를 연상시키며, 그 위와 아래로 배치된 수많은 기물과 문방구, 보물들은 단순한 수집의 나열이 아니라 국가와 인간 문명의 축적을 상징한다.
상단의 천문도는 인간의 앎이 하늘의 질서와 맞닿아 있음을 암시하고, 봉황·용·화훼는 태평과 덕치의 세계관을 보완한다. 하단으로 내려갈수록 일상과 예술, 학문과 생활의 기물이 공존하며, 이는 왕의 세계와 백성의 삶이 단절되지 않았던 이상적 질서를 상기시킨다. 조밀하면서도 균형 잡힌 구성은 전통 민화의 장식성과 현대 회화의 서사성을 동시에 성취한다.
그러나 그 말은 소유의 과시가 아니라, 가치의 선언이었다. 조혜선 작가의 왕물도는 이 오래된 민화의 진실을 오늘의 언어로 되돌려놓는다. ‘왕물도’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이 그림에 등장하는 기물들은 왕의 소유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그것들은 권력을 장식하는 물건이 아니라 권력조차 따라야 할 기준들이다. 학문을 상징하는 책과 문방구, 시간을 가늠하는 도구, 제의와 의례의 기물, 그리고 예술의 흔적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이는 통치의 핵심이 무력이 아니라 지식과 질서, 그리고 문화였음을 말해준다.
특히 화면 상단을 채운 천문도는 인상적이다. 하늘의 별자리는 인간의 지식이 자연의 질서에서 출발했음을 상기시키며, 인간이 만든 제도와 문명이 결코 우주의 법칙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겸허한 인식을 드러낸다. 왕은 하늘 아래 존재하는 인간일 뿐이며, 그 위에 놓인 별의 질서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메시지다.
붉은 색조로 통일된 화면은 권위와 열정을 동시에 담는다. 그러나 그 열정은 과시적이지 않고, 치밀한 질서 속에 절제되어 있다. 조혜선의 붉음은 욕망의 색이 아니라 책임의 색이다. 왕좌를 연상시키는 장식적 구조 또한, 앉아 있는 자보다 비어 있는 자리를 강조함으로써 권력의 무상함을 은유한다.
하단으로 갈수록 일상적 기물과 예술품이 등장하는 구성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위로 갈수록 고귀해지는 서열 구조가 아니라, 삶 전체가 하나의 연속된 질서임을 보여준다. 학문과 생활, 통치와 예술은 분리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민화가 꿈꾸던 세계다.
K-민화의 과제는 분명하다. 전통의 형식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형식이 담고 있던 사유의 깊이를 오늘의 언어로 다시 묻는 일이다. 조혜선의 왕물도는 이 점에서 분명한 답을 제시한다. 민화는 여전히 사회에 질문할 수 있으며, 권력과 지식, 삶의 기준을 다시 세울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이 그림은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참을 바라보게 만든다. 그리고 결국 묻게 한다. “오늘의 시대를 지배하는 물건은 무엇인가.” 그 질문이 이어지는 한, 왕물도는 과거의 그림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비추는 K-민화의 현재형으로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