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화 이성준 기자 | k-민화에서 ‘백수백복百壽百福’은 단순한 기원이 아니다. 그것은 오래 살고 많이 누리겠다는 소망을 넘어, 삶의 모든 국면에 깃들기를 바라는 총체적 축원이다. 장금희 작가의 ‘백수백복도’는 이 오래된 말에 현대의 눈금자를 대지 않는다. 대신, 복을 하나하나 세고, 삶을 하나하나 헤아리는 방식으로 전통의 깊이를 되살린다.
화면을 채운 수많은 ‘복’의 형상들은 결코 반복되지 않는다. 항아리, 새, 열매, 문자, 기물과 길상문은 서로 닮았으되 같지 않다. 이는 복이 단일한 형태로 주어지지 않음을 말한다. 장금희의 백수백복은 획일적 행운이 아니라, 각자의 삶에 맞게 도착하는 다채로운 축복이다. 누군가에게는 건강으로, 누군가에게는 평안으로, 또 다른 이에게는 관계의 온기로 찾아오는 복의 얼굴들이다.
이 작품의 미덕은 ‘과잉을 절제하는 질서’에 있다. 화면은 풍성하지만 산만하지 않다. 각 상징은 자기 자리를 지키며, 전체의 호흡을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이는 민화의 본령인 질서 있는 바람을 정확히 이해한 결과다. 복은 욕심으로 모을수록 흩어지고, 질서 속에 놓일 때 오래 머문다. 장금희는 이 진실을 화면 구성으로 증명한다.
색채 또한 눈여겨볼 지점이다. 따뜻한 바탕 위에 얹힌 색들은 선명하되 공격적이지 않다. 이는 복을 외치는 목소리가 아니라, 복을 초대하는 온도에 가깝다. 이 작품 앞에 서면 감탄보다 안심이 먼저 온다. 그것이 이 작품의 힘이다. 축복이란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머물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명인연합회 초청 개인전이라는 자리에서 백수백복도가 갖는 의미는 분명하다. 명인은 기술의 숙련자가 아니라, 상징을 책임 있게 다루는 사람이다. 장금희는 ‘복’이라는 가장 흔한 말을 가장 무겁게 다룬다. 가볍게 쓰일수록 공허해지는 단어를, 그는 수많은 상징과 정성의 밀도로 다시 채운다.
이 작품은 묻는다. “당신이 바라는 복은 무엇인가.” 그리고 답한다. “그 복은 이미 삶 곳곳에 흩어져 있다.”
민화는 늘 집 안에 걸렸고, 삶의 곁에 있었다. 장금희 작가의 백수백복도 역시 박물관의 언어보다 생활의 언어로 말한다. 이 그림을 마주하는 순간, 복은 더 이상 막연한 미래가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서로를 살피고, 하루를 무사히 건너는 일, 그 자체가 백수백복임을 조용히 일깨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많은 복’을 말하지 않는다.
‘깊은 복’을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