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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총사 칼럼] 이미형 작가의 “책이 풍경이 되고, 지식이 공간이 되다.”

- 이미형 교수 책거리 10폭 병풍이 말하는 조선의 교양과 오늘의 품격
- 책이 그림이 되고, 지식이 풍경이 될 때, k-민화의 시대를 만나다.

K-민화 이존영 기자 |   책은 쌓여 있으나 무겁지 않고, 지식은 가득하되 위압적이지 않다. 이미형 교수의 ‘책거리 10폭 병풍’ 앞에 서면 먼저 느껴지는 감각은 질서와 평정이다. 병풍을 가득 채운 서책과 기물들은 과시가 아니라 생활의 리듬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 화면에서 학문은 경쟁의 도구가 아니라 삶을 정돈하는 방식이다.

 

 

전통 책거리의 핵심은 ‘많음’이 아니라 ‘바름’에 있다. 이미형 교수는 이 원칙을 정교하게 복원하면서도, 현대의 시선으로 재구성한다. 각 폭은 독립된 세계처럼 보이지만, 열 폭이 함께 서 있을 때 하나의 사유 체계를 이룬다. 책과 문방구, 도자와 화병, 작은 기물 하나까지도 제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구성이 아니라 지식의 윤리다.

 

색채는 절제되어 있으나 단조롭지 않다. 청색의 공간감은 깊이를 만들고, 목재의 갈색은 시간을 축적한다. 화려함보다 지속성을 택한 이 색의 선택은, 오래 두고 마주할 병풍이라는 매체의 본질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병풍은 장식이 아니라 공간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인상적인 지점은 ‘사람의 부재’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병풍에는 사람이 가득하다. 책을 읽는 이, 글을 쓰는 이, 사유하는 이의 흔적이 기물 사이에 고요히 남아 있다. 이미형 교수의 책거리는 말한다. 지식은 소유가 아니라, 머무름의 결과라고...

 

이 작품은 전통을 재현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오늘의 교육, 오늘의 지성, 오늘의 삶에 대해 묻는다. 빠르게 소비되는 정보의 시대에, 이 병풍은 속도를 늦추고 깊이를 회복하라고 권한다. 그래서 이 책거리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제안서다.

 

10폭 병풍이라는 규모는 단순한 크기가 아니라 완결의 형식이다. 열 개의 폭은 열 개의 질문이자 열 개의 답이다. 지식은 쌓이되 흐트러지지 않아야 하며, 아름다움은 드러나되 소란스럽지 않아야 한다는, 오래된 가르침이 이 병풍 전체에 배어 있다.

 

이 병풍의 가치는 숫자로도 말할 수 있다. 병풍 시가 1억 원이다. 그러나 진정한 가치는 그 금액 너머에 있다. 이 작품은 공간의 격을 바꾸고,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의 자세를 바꾼다. 집이든, 서재든, 공적 공간이든, 이 병풍이 놓이는 순간, 그곳은 사유의 장소가 된다.

 

이미형 교수의 〈책거리 10폭 병풍〉은 조용히 선언한다. 지식은 장식이 아니라 삶의 구조이며, 민화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언어라고....

 

 

작가노트 | 이미형
책거리는 단순히 책을 그린 그림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이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살고자 했는가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번 10폭 병풍에서는 ‘많음’보다 ‘질서’를, ‘화려함’보다 ‘지속성’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각 폭은 독립된 화면이지만, 함께 놓일 때 하나의 사유 공간이 되도록 구성했습니다. 책과 기물 하나하나에는 쓰임과 자리가 있으며, 그 질서가 곧 삶의 태도라고 믿습니다.

 

전통 책거리의 정신을 존중하되, 오늘의 공간에서도 자연스럽게 숨 쉴 수 있도록 색과 구성을 조율했습니다. 이 병풍이 놓이는 곳이 단순히 보기 좋은 공간이 아니라, 생각이 머무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책은 읽히기 위해 존재하고,
그림은 오래 곁에 있기 위해 존재합니다.

 

이 병풍이 누군가의 하루 곁에서
조용히 생각을 정돈해 주는 그림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