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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총사 칼럼] 문순분 ‘모란화조도’ “부귀는 소리 없이 깃든다.”

- 대한민국 명인연합회 초청 개인전
- 부귀는 언제나 요란하지 않았다.

K-민화 이성준 기자 |  문순분 작가의 ‘모란화조도’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진짜 복은 외침이 아니라 깃듦의 방식으로 삶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화면 중앙에 뿌리를 내린 모란은 단정하면서도 당당하다. 모란은 예로부터 부귀와 영화의 상징이었으나, 이 작품 속 모란은 과장된 화려함 대신 균형과 절제의 미를 택한다. 꽃잎은 풍성하지만 흐트러지지 않고, 색은 깊지만 탁하지 않다. 이는 부귀를 욕망의 대상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삶의 결실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가깝다.

 

모란 가지 위에 앉은 한 쌍의 새는 이 그림의 또 다른 주제다. 새는 기쁨과 길상吉祥을 상징하지만, 여기서는 소식을 전하는 존재라기보다 이미 도착한 평안의 증거처럼 보인다. 서로를 향해 몸을 기울인 두 새의 자세는 경쟁이 아닌 공존, 긴장이 아닌 신뢰를 말한다. 부귀는 홀로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머물 때 비로소 온전해진다는 민화적 세계관이 이 작은 장면에 응축되어 있다.

 

배경의 여백 또한 인상적이다. 모란과 새를 둘러싼 공간은 비어 있으되 허전하지 않다. 이는 동양 회화가 지닌 여백의 철학, 즉 비움으로써 채우는 미학을 충실히 따른 결과다. 관람자는 그 여백 속에서 각자의 삶을 대입하게 되고, 그림은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마음을 머무르게 하는 자리가 된다.

 

문순분 작가의 색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분홍과 자주의 모란색은 화사하지만 과하지 않고, 잎의 청록은 생기를 주되 화면을 지배하지 않는다. 이 절제된 색의 조율은 오랜 수련 없이 도달할 수 없는 경지다. 명인의 작업이란 결국 기술의 총합이 아니라, 멈출 줄 아는 판단력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이 작품은 조용히 증명한다.

 

대한민국 명인연합회 초청 개인전이라는 자리에서, 모란화조도는 민화의 본령을 다시 한 번 환기한다. 민화는 복을 부르는 그림이지만, 동시에 복을 견딜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을 묻는 그림이기도 하다. 이 작품 속 부귀는 쟁취의 결과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삶에 스며든 상태다.

 

지금 우리의 시대는 부귀를 너무 빠르게 소비한다. 더 크게, 더 화려하게, 더 많이를 외친다. 그러나 문순분 작가의 모란은 말한다. 꽃은 제철에 피고, 새는 제 자리에 앉을 때 가장 아름답다고...

 

이 그림 앞에 서면 묻게 된다. 나는 지금 무엇을 쫓고 있는가. 혹시 이미 내 삶에 깃들어 있는 복을 알아보지 못한 채, 더 큰 것을 찾느라 분주한 것은 아닌가, 모란화조도는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이미 충분한 한 장면을 내어놓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