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화 이성준 기자 | 겨울을 밀어내는 함성도, 계절을 바꾸는 선언도 없이, 그저 어느 날 문득 살아 있는 기운으로 스며든다. 유현옥 작가의 ‘봄이야기’는 바로 그 조용한 도착을 그린 그림이다.
그림 속 두 마리의 학은 서로를 향해 서 있다. 날아오르지도, 포효하지도 않는다. 다만 같은 가지 위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이는 부부의 상징이자, 신뢰의 형상이며, 오래된 시간 끝에 도달한 평온의 자세다. 민화에서 학은 장수와 고결함을 뜻하지만, 이 작품의 학은 그 상징을 넘어 관계의 품격을 보여준다.
학이 서 있는 가지에는 매화가 피어 있다. 매화는 겨울 끝자락에 가장 먼저 피는 꽃이다. 추위를 견딘 자만이 봄을 부른다는 동양적 세계관이 이 작은 꽃에 담겨 있다. 유현옥은 매화를 화려하게 부각시키지 않는다. 대신 가지의 굴곡과 여백 속에 꽃을 흩뿌리듯 배치한다. 이는 봄이 ‘드러나는 사건’이 아니라, 서서히 밝혀지는 상태임을 말해준다.
색채 또한 절제되어 있다. 학의 깃털은 청·백·황의 미묘한 층위로 겹쳐지고, 배경은 과하지 않은 황토빛으로 화면 전체를 감싼다. 이 색의 선택은 봄을 축제처럼 소비하지 않고, 시간의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가깝다. 민화 특유의 장식성보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가 먼저 느껴진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움직임의 부재’다. 그러나 그것은 정체가 아니다. 오히려 충분히 성숙한 생명만이 가질 수 있는 정중한 멈춤이다. 학은 날 수 있지만 날지 않고, 꽃은 피었지만 다투지 않는다. 이 고요 속에서 관람자는 깨닫게 된다. 봄이란, 무엇인가를 더하는 계절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내려놓은 뒤에야 비로소 도착하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대한민국 명인연합회 초청 개인전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 유현옥 작가의 봄이야기는 명인의 자격을 조용히 증명한다. 기교의 과시가 아니라, 상징을 다루는 태도에서 성숙함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k-민화는 원래 삶의 바람을 담는 그림이었지만, 이 작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삶의 자세를 제안한다.
빠른 변화와 큰 목소리가 미덕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이 그림은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우리의 봄은 너무 요란하지 않은가. 혹시 아직 겨울을 다 견디지 못한 채, 꽃부터 부르려 한 것은 아닌가. 유현옥 작가의 봄이야기는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이미 피어 있는 한 장면을 조용히 내어놓을 뿐이다. 그리고 그 앞에 선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