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화 이성준 기자 | 그러나 그 침묵은 공백이 아니라, 오래 축적된 시간의 언어다. 이진경 작가의 ‘백학도’에서 학은 날거나 머물며, 혹은 다시 날아오를 준비를 한다. 이 장면에는 과장된 상징도, 설명을 요구하는 장치도 없다. 대신 화면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기다림의 품격이다.
소나무는 굽이치며 서 있다. 바람과 세월을 견뎌온 몸의 기록이다. 그 곁을 흐르는 물과 바다는 쉼 없이 반복되는 삶의 리듬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 위로 흰 학들이 날아오른다. 이 비행은 도약이 아니라 순환이다. 떠남과 귀환, 시작과 마무리가 하나의 호흡으로 이어진다.
백학은 장수를 뜻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학은 단순한 길상의 상징을 넘어선다. 학은 서두르지 않는다. 무리를 지어도 앞서려 하지 않고,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 이는 오늘의 사회가 잊고 지낸 태도에 대한 조용한 제안이다. 빠름이 능력이 되고, 과시가 성취로 오해되는 시대에, 이진경의 학은 속도의 윤리를 묻는다.
색은 절제되어 있고, 선은 단정하다. 파도의 반복과 산의 굴곡, 구름의 흐름은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다.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전체를 이룬다. 이것이 민화가 오래도록 지켜온 세계관이다. 경쟁이 아니라 공존, 승리가 아니라 지속. 백학도는 이 원칙을 한 치의 소란도 없이 화면에 세운다.
달은 높고 둥글다. 빛은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는다. 학이 그 빛 아래 날아오르는 이유는, 더 밝은 곳을 향해서가 아니라 제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그래서 이 비행은 화려하지 않고, 오히려 단정하다. 오래 보고 나면 마음이 가라앉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진경 작가의 백학도는 묻지 않는다. 다만 보여준다. 어떻게 서야 하는지, 언제 날아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 머물러야 하는지를...k-민화는 늘 이렇게 말해왔다. 삶은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제 시간에 도착하는 것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