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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총사 칼럼] 김건하 작가의 ‘화정도’로 읽는 “K-민화의 생활 철학”

- 꽃은 장식이 아니고, 채소는 하찮지 않다

K-민화 이성준 기자 |  k-민화에서 정원은 늘 말이 없는 장소였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는 삶의 원칙이 숨 쉬고 있었다. 김건하 작가의 ‘화정도’는 그 오래된 침묵을 다시 불러낸다.

 

 

이 그림 속 정원에는 위계가 없다. 당근과 가지가 꽃보다 낮지 않고, 국화와 작약이 채소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 나비와 곤충은 장식처럼 머무르지 않고, 순환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이는 질서가 없는 세계가 아니라, 서열이 필요 없는 세계다.

 

민화는 원래 삶의 그림이었다. 김건하는 그 사실을 과장하지 않는다. 상서도, 길상도라는 이름으로 덧칠된 해석을 걷어내고, 생활의 본래 자리로 그림을 되돌린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눈을 압도하는 화려함 대신, 마음을 붙드는 균형이 있다.

 

당근은 땅속에서 자라난다. 보이지 않는 시간 동안 뿌리를 키운 뒤에야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낸다. 가지는 소리 없이 열매를 맺고, 꽃은 피되 스스로를 자랑하지 않는다. 김건하 작가의 화정도는 이 평범한 존재들의 태도를 통해 말한다.

 

삶의 중심은 늘 조용한 곳에 있다고. 그 위를 오가는 나비와 곤충은 잠시 머물다 떠난다. 그러나 그 짧은 체류가 있어 정원은 살아 움직인다. 먹고사는 문제와 아름다움은 이 그림 안에서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지탱한다. 민화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생존과 기쁨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상이 아니라 관계다. 채소와 꽃, 곤충과 식물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각자는 제 자리를 지키며 전체를 이룬다. 경쟁이 아니라 공존, 과시가 아니라 지속. 이것이 민화가 그려온 이상적인 세계의 모습이다.

 

오늘의 사회는 여전히 묻는다. 무엇이 더 화려한가, 무엇이 더 앞서는가. 그러나 김건하의 화정도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삶에는 뿌리가 있는가.” 이 그림은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무엇을 키우고 있는지, 무엇을 돌보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잠시 쉬게 하고 있는지를...

 

K-민화의 힘은 여기에 있다.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생활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건네는 깊은 성찰. 김건하 작가의 화정도는 그 성찰을 꽃과 채소라는 가장 소박한 언어로 전한다. 그래서 이 그림은 오래 남는다. 화려하지 않기에, 그리고 우리 삶과 너무 닮아 있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