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화 이성준 기자 | 이 그림에는 호랑이가 없다. 그러나 누구도 이 작품 앞에서 호랑이의 부재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은, 호랑이보다 더 호랑이 같은 기운이다. 이경아의 '호피도'는 형상을 지운 자리에서 본질만을 남긴 k-민화다.
호피虎皮는 단순한 무늬가 아니다. 조선의 민화에서 호피는 권위와 벽사僻邪, 그리고 두려움을 넘어서는 생존의 상징이었다. 왕의 좌정 아래 깔리던 호피, 장수의 용맹을 대신하던 호피는 ‘사냥된 짐승의 껍질’이 아니라, 제어된 힘의 표식이었다. 이경아는 바로 그 지점을 정확히 짚는다. 호랑이의 눈, 이빨, 발톱을 모두 지우고도, 힘은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작품 중앙을 따라 흐르는 대칭의 축은 인상적이다. 무작위처럼 보이는 점과 얼룩들은 실은 치밀한 리듬을 이루며, 중심을 기준으로 미묘한 균형을 유지한다. 이는 자연의 무늬를 그대로 베낀 것이 아니라, 자연이 가진 질서를 해석한 결과다. 야성은 혼돈이 아니라, 스스로의 법칙을 지닌 상태임을 이 작품은 말한다.
색감 또한 절묘하다. 황토에 가까운 바탕 위에 얹힌 검갈색의 무늬는 과하지 않으며, 오히려 오래된 시간의 결을 닮았다. 이는 ‘날카로운 포효’가 아니라, 침묵 속의 위엄이다. 민화가 늘 그러했듯, 이 호피도는 보는 이를 압도하지 않는다. 대신 곁에 두고 오래 마주할수록, 점점 깊어지는 기운으로 공간을 장악한다.
이경아 작가의 호피도는 현대적이다. 그러나 그 현대성은 새로움을 과시하는 방식이 아니다. 형상을 덜어내고, 상징을 압축하며, 의미를 응축하는 방식이다. 이는 동양 회화의 핵심이자, 민화가 지닌 가장 강력한 미덕이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은 그림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오늘의 사회는 힘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다. 목소리는 커지고, 이미지는 과잉되며, 존재는 끊임없이 증명되기를 요구받는다. 그러나 이 호피도는 반대로 말한다. 진짜 힘은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이미 그 자리에 깔려 있고, 이미 그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고...
이 작품을 마주한 공간은 달라진다. 벽 하나, 바닥 하나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기운이 머무는 자리가 된다. 호랑이는 없지만, 호랑이의 기개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 기개는 위협이 아니라, 경계와 균형의 언어로 다가온다.
이경아 작가의 '호피도'는 묻는다.
우리는 지금 어떤 힘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힘을, 과연 어떻게 쓰고 있는가.
k-민화는 늘 현재형이다.
이 호피도 또한 그렇다. 오늘의 공간에서, 오늘의 사람에게, 침묵의 힘을 다시 가르치는 그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