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화 이존영 기자 | 봉황은 함부로 날지 않는다. 태평성대가 아니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군자가 다스리는 세상이 아니면 노래하지 않는다. 그래서 봉황은 k-민화에서 ‘권력’보다 먼저 품격의 상징으로 그려져 왔다. 김민주 작가의 '봉황도'는 이 오래된 상징을 오늘의 언어로 조용히 번역해낸 작품이다.
이 봉황은 위엄으로 군림하지 않는다. 날개를 크게 펼치지 않고, 소리를 높이지도 않는다. 대신 바위 위에 내려앉아 주변의 생명을 바라본다.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며, 곤충과 새들이 저마다의 궤적을 그리는 가운데 봉황은 중심에 있으되 중심을 주장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 그림의 첫 번째 미덕이다.
작품의 구성은 위로 치솟기보다 아래로 뿌리내린 질서를 따른다. 바위는 흔들림 없는 토대처럼 봉황을 받치고, 그 위에 피어난 모란과 매화는 계절과 덕목을 동시에 상징한다. 모란의 풍요와 매화의 절개가 한 화면에 공존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봉황은 화려함 위에 서는 존재가 아니라, 절제된 풍요 위에 머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봉황의 깃털은 특히 인상적이다. 녹청과 주홍, 백색과 금빛이 겹겹이 쌓였지만 과장되지 않는다. 이는 기술의 과시가 아니라, 오랜 수행 끝에 도달한 색의 태도다. 색은 서로 경쟁하지 않고, 형태는 질서를 잃지 않는다. k-민화의 본령이 보는 이를 편안하게 하는 힘’이 여기서 또렷이 살아난다.
주목할 점은 봉황이 한 쌍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음양의 조화이자, 혼자가 아닌 함께의 길상을 뜻한다. 그러나 이 둘은 서로를 압도하지 않는다. 시선은 나란히 놓이고, 자세는 균형을 이룬다. 오늘의 사회가 잃어버린 관계의 미학이 나란히 서되 앞서지 않는 태도가 이 장면에 고요히 담겨 있다.
김민주 작가의 '봉황도'는 묻는다.
“지금 이 시대에 봉황은 어디에 머무는가?”
그 답은 화려한 권좌도, 높은 누각도 아니다. 서로를 해치지 않는 자리, 자연과 인간이 과도하지 않은 거리로 공존하는 자리다. 다시 말해, 품격이 회복된 일상의 자리다.
그래서 이 그림은 길상화이되 선언문에 가깝다.
잘 되기를 비는 그림이 아니라, 잘 살아가야 봉황이 머문다는 메시지다. 복은 요청의 대상이 아니라, 태도의 결과임을 이 작품은 분명히 말한다.
봉황은 오늘도 날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충분히 높다.
김민주 작가의 '봉황도'는 그 사실을 조용히 증명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