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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총사 칼럼] “우현진의 K-민화 모란 병풍” 돌처럼 남고, 꽃처럼 피어나다.

K-민화 이성준 기자 |  우현진 작가의 작품은 전통 민화의 상징 체계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그 안에 오늘의 호흡을 불어넣는다. 화면을 채운 모란은 단순한 부귀의 상징을 넘어, 시간 속에서도 시들지 않는 삶의 기품을 말한다. 붉은 모란과 백모란이 나란히 서 있는 구도는 대비가 아닌 공존을 택한다. 강렬함과 온유함, 열정과 평정이 한 화면 안에서 자연스럽게 숨을 고른다.

 

 

작품 하단을 받치고 있는 괴석은 이 그림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푸른 기운을 머금은 기암은 흔들리지 않는 근간을 상징하며, 그 위로 자라나는 모란과 들꽃들은 삶의 지속과 회복을 은유한다. 이는 민화가 지녀온 길상吉祥의 의미를 오늘의 언어로 재해석한 지점이다. 화려함은 뿌리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작가는 조용히 화면으로 증명한다.

 

나비의 등장은 이 작품에 생동을 더한다. 정지된 병풍의 화면 속에서도 나비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계절의 흐름과 생명의 순환을 암시한다. 전통 민화가 지녔던 ‘기원의 그림’이라는 본질은 그대로 유지하되, 그 기원의 대상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일상으로 확장된다.

 

우현진의 모란 병풍은 보여주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다독이는 그림이다. 이 작품 앞에 서면, 부귀란 소유가 아니라 균형이며, 복이란 우연이 아니라 쌓아온 시간임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이것이 바로 K-민화가 동시대에도 유효한 이유다.

 

작가노트 | 우현진

 

“나는 모란을 그리며 시간을 쌓는다”

 

민화 속 모란은 언제나 완전한 모습으로 피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리는 모란은 하루아침에 피어난 꽃이 아닙니다.
돌처럼 단단한 시간 위에서, 계절을 견디며 자라난 꽃입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붉은 모란과 흰 모란을 함께 배치했습니다.
강한 삶과 고요한 삶, 드러나는 복과 스며드는 복이
서로 다르지만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괴석은 제 작업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흔들리지 않는 기반, 삶의 중심, 그리고 침묵 속의 힘.
그 위에서 피어나는 꽃과 날아드는 나비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는 생의 흐름을 상징합니다.

 

저에게 민화는 과거의 그림이 아니라
지금도 사람을 위로하고 기원하는 살아 있는 언어입니다.
이 작품이 누군가의 공간에서
조용한 안녕과 단단한 복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