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화 이존영 기자 | 민화에서 물고기는 늘 ‘과정’의 상징이었다. 아직 하늘을 날지 못하지만, 이미 하늘을 향해 몸을 틀고 있는 존재이다. 정선영 작가의 '금입은어변성령도'은 그 결정적 순간을 원형의 우주 속에 봉인한다. 검은 바탕 위에 금빛으로 떠오른 원은 경계이자 약속이다. 이 원 안에서 물고기는 단순한 생물이 아니다. 파도를 가르는 몸짓은 수행의 반복을 닮았고, 비늘 하나하나는 시간의 층위를 이룬다. 물결은 쉼 없이 겹치며, 용문을 향한 의지는 흔들림 없이 축적된다. 여기서 ‘변變’은 돌연한 기적이 아니라 견딘 시간의 합이다. 주목할 것은 입에서 피어오르는 구름과 불꽃의 결이다. 아직 완전한 용의 형상은 아니지만, 이미 숨은 바뀌었다. 이는 결과를 앞서 보여주지 않는 민화의 미덕이다. 대신 가능성이 현실을 밀어 올리는 압력을 그린다. 그래서 이 그림의 긴장은 과장되지 않고, 도약은 소란스럽지 않다. 금입金入의 선택 역시 의미심장하다. 금은 부의 표식이 아니라, 인내가 끝내 획득한 광채다. 검은 바탕과의 대비는 ‘빛나기 위해 어둠이 필요하다’는 오래된 진실을 환기한다. 원형 구도는 시작과 끝을 지우며, 도약이 곧 순환임을 말한다. 오르는 자는 다시 흐
K-민화 이존영 기자 | 민화 속 호랑이는 늘 두 얼굴을 지닌다. 산군山君으로 불리며 두려움의 상징이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딘가 어수룩한 표정으로 웃음을 자아낸다. 김영민 작가의 '까치와 호랑이'는 바로 그 이중성의 미학을 정면에서 드러낸다. 작품의 중심을 차지한 호랑이는 크고 위압적이다. 그러나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표정에는 공포보다 당황이 먼저 읽힌다. 이는 절대 권력의 형상이 아니라, 권력의 허점을 드러낸 얼굴이다. 민화의 호랑이가 무서운 이유는 힘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를 무섭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위와 주변을 맴도는 까치들은 이 그림의 진짜 주인공이다. 까치는 고고하지 않다. 대신 재잘대고, 움직이고, 거리낌 없이 접근한다. 까치는 민중의 목소리이며, 질문하는 존재다. 호랑이를 향해 울부짖지 않고, 겁먹지도 않는다. 그저 바라보고, 알리고, 웃는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새끼 호랑이들의 등장이다. 어른 호랑이의 위세는 흉내 내지만, 아직 그 힘을 알지 못한다. 이는 권력이 학습되고 재생산되는 구조를 은근히 드러내며,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연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암시한다. 민화의 풍자는 늘 이렇게 부드럽지만 정확하다. 김영민의 색채
K-민화 이존영 기자 | K-민화에서 ‘수壽’는 숫자가 아니다.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한 응답이다. 고일민 작가의 '수壽'는 이 한 글자를 시간의 기록이 아니라 생명의 합창으로 풀어낸다. 작품 속 ‘壽’자는 더 이상 문자에 머물지 않는다. 글자의 획마다 물결이 흐르고, 물고기가 헤엄치며, 거북이 천천히 시간을 건넌다. 꽃은 피고 새는 깃을 고른다. 이 모든 생명은 각자의 속도로 존재하지만,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장수는 단일한 힘이 아니라 공존의 결과임을 이 작품은 조용히 말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수’의 구조를 해체하지 않으면서도, 그 내부에 우주를 담았다는 점이다. 파도는 생의 역동을, 거북은 인내와 지속을, 물고기는 번성과 순환을 상징한다. 여기에 꽃과 과실, 새의 형상이 더해지며 ‘살아 있음’의 결이 촘촘해진다. 장수는 정체가 아니라, 끊임없는 관계 맺기라는 메시지가 분명해진다. 색채 역시 과시적이지 않다. 검은 바탕은 깊이를 만들고, 그 위에 얹힌 색들은 각자의 몫만큼 빛난다. 이는 오래 산다는 것이 요란한 성취의 나열이 아니라, 차분한 누적임을 환기한다. 세월은 소리 없이 쌓이고, 그 위에 생은 단단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