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화 이존영 기자 | 일월오봉도는 왕의 뒤에 놓인 그림이었지만, 실은 왕을 위한 그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왕조가 지켜야 할 질서를 그린 그림이었고, 인간 위에 놓인 자연의 법칙을 시각화한 우주도였다. 정선영 작가의 ‘일월오봉도’는 이 오래된 도상을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호흡하게 만든다. 화면을 가르는 짙은 밤하늘, 그 위에 떠 있는 해와 달은 낮과 밤의 대립이 아니라 공존의 약속처럼 배치된다. 어느 한쪽도 중심을 독점하지 않는다. 균형은 이미 전제되어 있다. 오봉은 산이 아니라 원칙의 형태다. 다섯 봉우리는 위계를 이루지 않으며,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다. 파도는 멈추지 않고 흐르되 넘치지 않고, 폭포는 떨어지되 소란스럽지 않다. 이는 힘의 과시가 아니라, 질서가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풍경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것은 색의 절제다. 전통 일월오봉도의 상징색을 유지하면서도, 과도한 장식 대신 리듬과 반복으로 화면을 구성한다. 이는 왕권의 위엄을 강조하기보다, 국가와 개인을 관통하는 보이지 않는 기준을 드러내려는 태도에 가깝다. 오늘의 사회는 끊임없이 중심을 요구한다. 누가 중심인가, 무엇이 옳은가를 묻는다. 그러나 정선영의 일월오봉는 다른 질문
K-민화 이존영 기자 | 연꽃은 언제나 말이 적은 상징이었다. 진흙에서 피어나되 진흙을 말하지 않고, 물 위에 서되 물을 가르지 않는다. 정선영 작가의 '연화도'는 이 연꽃의 태도를 그림 전체의 호흡으로 확장한 작품이다. 이 그림에서 연꽃은 주인공이지만, 결코 앞에 나서지 않는다. 그저 자기 자리에 서서 계절을 건너는 존재로 그려진다. 작품의 화면을 가득 채운 연잎은 겹겹이 포개지며 숲처럼 서 있다. 크고 작은 잎들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위로 치솟은 줄기는 경쟁하지 않고, 물 위의 수면은 흔들리되 요란하지 않다. 이 질서는 인위적으로 배치된 조화가 아니라, 오래 지켜본 자연의 리듬에서 비롯된 것이다. 연꽃 사이를 건너는 시간으로 정선영 작가의 '연화도'에서 중요한 것은 꽃의 만개가 아니라 과정이다. 봉오리는 아직 열리지 않았고, 이미 진 꽃도 있다. 잎 아래에서는 물새가 쉬고, 하늘에서는 새가 지나간다. 모든 것은 동시에 완성되지 않는다. 이 그림은 그 사실을 서두르지 않고 보여준다. 연꽃은 불교적 상징으로 자주 해석되지만, 이 작품은 교리보다 생활의 감각에 가깝다. 깨달음의 표식이 아니라, 오늘을 견디는 방식에 대한 은유다. 연잎 위에 고인 물
K-민화 강경희 기자 | 연꽃은 늘 물 위에 떠 있지만, 그 뿌리는 가장 깊은 진흙 속에 닿아 있다. 그래서 연꽃은 아름답다. 깨끗해서가 아니라, 더러움 속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기 때문에. 정선영 작가의 연화도는 바로 그 연꽃의 본질을 고요한 화면 속에 담아낸 작품이다. 요란한 상징도, 과장된 색채도 없다. 대신 물의 흐름, 잎의 겹침, 꽃의 열림이 차분한 리듬으로 이어지며 한 폭의 사유 공간을 만들어낸다. 화면을 가득 채운 연잎은 서로 겹치고 기대며 군락을 이룬다. 그러나 그 안에는 혼란이 없다. 각자의 방향으로 뻗어 있으면서도 전체의 질서를 해치지 않는다. 이는 연화도가 전통적으로 품어온 공존과 조화의 세계관을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번역한 결과다. 연못 위를 유유히 헤엄치는 오리와 하늘을 가르는 새들은 정적인 풍경 속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는다. 그 움직임은 급하지 않고, 서두르지도 않는다. 삶은 반드시 빨라야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는 조용한 가르침이 그 안에 스며 있다. 정선영의 연꽃은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꽃잎은 겹겹이 열리되, 항상 중심을 향해 모인다. 이는 곧 이 작품이 말하는 핵심이다. 중심을 잃지 않는 삶, 흔들리는 세상 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