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화 이성준 기자 | 행렬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가 스스로를 조직하는 방식이며, 공동체가 공유한 질서의 시각적 선언이다. 이미형 교수의 ‘행렬도’는 이 오래된 개념을 오늘의 감각으로 되살리며, ‘질서의 미학’이 어떻게 예술로 완성되는지를 보여준다. 화면을 가득 채운 인물과 기물, 깃발과 악대, 의장대의 반복적 배열은 혼잡이 아니라 리듬을 만든다. 수백의 형상이 등장하지만, 그 어느 하나도 무질서하지 않다. 각각은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으며, 전체는 하나의 방향으로 흐른다. 이 작품에서 행렬은 권력의 과시가 아니라 공동체의 호흡이다. 전통 행렬도의 본질은 기록성과 상징성의 결합에 있다. 역사적 사건을 남기면서도, 그 사건이 지닌 위계·예법·미감을 동시에 담아낸다. 이미형 교수는 이 전통적 형식을 충실히 따르되, 색과 간결한 필치, 과감한 화면 분할을 통해 현대적 시선을 더한다. 덕분에 작품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오늘의 관람자에게 말을 건다. 특히 주목할 점은 ‘거리감’의 처리다. 개별 인물은 소략하게 그려졌지만, 군집은 오히려 또렷하다. 이는 개인보다 질서와 관계가 중심이 되는 행렬도의 미학을 정확히 이해한 결과다. 가까이서 보면 작은
K-민화 이미형 대기자 | 해마다 새해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한 글자를 떠올린다. 바로 ‘福복 이다. 그러나 이 글자를 단순한 행운의 기호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이미 복의 절반을 놓치고 있는 셈이다. 福은 우연이 아니다. 福은 기다림이 아니라 도래到來 이며, 정지된 상징이 아니라 움직이는 기운이다. K-민화 ‘福’자 안 에 병오년의 붉은 말을 담아낸 이 작품은 그 오래된 진실을 다시 일깨운다. 복은 가만히 벽에 붙어 있는 글자가 아니라, 삶을 향해 힘차게 달려오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말은 예로부터 길조였다. 전쟁에서는 승전의 상징이었고, 평시에는 교류와 번영, 그리고 민간에서는 출세·속도·성취를 의미했다. 특히 병오년의 말은 ‘붉은 말’이다. 붉음은 불火의 기운이며, 정체를 허락하지 않는 추진력과 생명력의 색이다. 이 작품 속 말은단순히 福자를 장식하는 도상이 아니다. 福자의 구조 안에서 말은 몸을 일으키고, 시선을 앞으로 두며, 지체 없는 움직임을 준비한다. 이는 곧 이렇게 말한다. “복은 준비된 삶을 향해 먼저 움직인다.” 福자의 조형 또한 의미심장하다. 전통적으로 福은 ‘신에게 올리는 제사’와 ‘가득 찬 그릇’을 뜻한다. 이 작품에서는 그
K-민화 이성준 기자 | 우현진 작가의 작품은 전통 민화의 상징 체계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그 안에 오늘의 호흡을 불어넣는다. 화면을 채운 모란은 단순한 부귀의 상징을 넘어, 시간 속에서도 시들지 않는 삶의 기품을 말한다. 붉은 모란과 백모란이 나란히 서 있는 구도는 대비가 아닌 공존을 택한다. 강렬함과 온유함, 열정과 평정이 한 화면 안에서 자연스럽게 숨을 고른다. 작품 하단을 받치고 있는 괴석은 이 그림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푸른 기운을 머금은 기암은 흔들리지 않는 근간을 상징하며, 그 위로 자라나는 모란과 들꽃들은 삶의 지속과 회복을 은유한다. 이는 민화가 지녀온 길상吉祥의 의미를 오늘의 언어로 재해석한 지점이다. 화려함은 뿌리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작가는 조용히 화면으로 증명한다. 나비의 등장은 이 작품에 생동을 더한다. 정지된 병풍의 화면 속에서도 나비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계절의 흐름과 생명의 순환을 암시한다. 전통 민화가 지녔던 ‘기원의 그림’이라는 본질은 그대로 유지하되, 그 기원의 대상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일상으로 확장된다. 우현진의 모란 병풍은 보여주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다독이는 그림이다. 이 작품 앞에 서
K-민화 이성준 기자 | K-민화연구소가 ‘K-민화, K-Folk Painting’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민화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며 세계화를 본격 추진하고 있다. 이는 한국 전통 민화에 ‘K’를 접목해 세계 속에서 한국 고유의 민속미술을 구별 가능하게 하고, 동시에 국제 미술계와의 연결고리를 마련하기 위한 전략적 명명이다. = 동영상 =
K-민화 이성준 기자 | 박용운 작가의 이 작품은 ‘봄’이라는 계절을 그리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화면 속 꽃은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시간의 문을 여는 존재이며,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새의 비상은 변화의 순간을 상징한다. 정지된 풍경 속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존재인 새는, 이 그림 전체에 생명과 방향을 부여한다. 굵고 단단한 가지는 시간의 축적을 닮았고, 그 위에 피어난 꽃들은 기다림 끝에 도달한 결실처럼 보인다. 하얀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장면은 덧없음이 아니라, 다시 피어날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존재의 여유다. 이는 민화 화조도가 지녀온 본래의 미덕이자 자연을 통해 삶을 위로하는 기능을 충실히 계승한 해석이다. 박용운의 붓은 과장되지 않는다. 색은 절제되어 있고, 여백은 넉넉하다. 그 덕분에 관람자는 장면을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안에 잠시 머문다. 꽃과 새, 바람과 시간은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공존하며, 화면은 하나의 조용한 문장이 된다. 이 작품은 말한다. 봄은 갑자기 오지 않으며, 비상은 준비된 가지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그래서 이 그림은 계절화이자 삶의 은유다. 조급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믿음, 그리고 때가 오면 자연스럽게 날아오를 수 있
K-민화 이성준 기자 | 본 작품은 유교적 덕목인 효孝와 제悌를 새해의 길상적 의미와 결합한 문자도 형식의 세화이다. 효 자에는 석류, 연꽃, 새와 덩굴이 어우러져 생명의 잉태와 번성, 부모에 대한 공경과 은혜의 깊이를 상징한다. 석류의 다산과 연꽃의 청정함은 부모의 희생과 품성을 드러내며, 서로 기대어 있는 새들은 부모와 자식 간의 정을 은유한다. 제 자에는 잉어와 악기, 식물 문양이 배치되어 형제 간의 화합과 조화를 표현한다. 잉어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함께 나아가는 형제의 의지를, 악기는 서로 다른 소리가 조화를 이루는 형제애를 상징한다. 구름과 문양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변치 않는 인간의 도리를 뜻하며, 전체 화면은 새해를 맞아 가정의 평안과 윤리적 질서가 회복되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단순한 문자 표현을 넘어, 덕목이 삶 속에서 살아 숨 쉬기를 바라는 기원의 그림이다. 작가 노트 | 엄진홍 새해를 맞이하며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무엇을 바라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였다. 효와 제는 시대가 변해도 인간 관계의 근본을 이루는 가치이며, 세화라는 형식은 그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하는 장치가 된다. 나는 문자를 읽
K-민화 이성준 기자 | 본 작품은 전통 민화에 담긴 길상과 염원의 의미를 오늘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현대 길상화입니다. 민화가 지닌 본래의 역할은 특정한 계층이나 시기를 위한 그림이 아니라,누구나 일상 속에서 마음을 내려놓고 위로와 희망을 얻을 수 있는 삶의 그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전통 속에 담긴 다양한 염원과 길상의 상징을 바탕으로,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감정과 이야기를 화폭에 담고자 했다. 말과 책거리, 도구들..성취와 배움, 삶의 축적과 이어짐을 의미하며, 원형의 구조는 소망이 순환하고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특정한 의미를 강요하기보다, 작품을 마주하는 각자가 자신의 바람과 감정을 투영할 수 있는 열린 길상화이기를 지향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시선을 머물렀을 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작은 위로나 잔잔한 행복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했다. 전통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 속에서 다시 호흡할 때 살아난다고 믿습니다. 본 작품이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자리이자 새해의 좋은 기운과 소망을 전하는 그림이 되기를 바란다. 작가노트 | 이지연 저는 전통을 재해석하여 현대민화로 길상
K-민화 이성준 기자 | 정원숙 작가의 모란도는 전통 민화가 지닌 길상의 의미를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피워 올린 K-민화의 모범적 사례다. 화면을 가득 채운 모란은 부귀와 영화, 번영의 상징이지만, 이 작품에서 그 의미는 단순한 기원의 차원을 넘어 따뜻한 덕담처럼 다가온다. 붉은 모란과 흰 모란이 어우러진 화면은 대비보다 조화를 택한다. 강렬함과 순정함, 열정과 평안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한 폭 안에서 공존한다. 이는 새해를 맞이하는 세화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한 해의 시작에서 모든 이에게 골고루 복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이 색과 리듬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화면 하단의 괴석 표현이다. 단단하고 묵직한 바위는 흔들리지 않는 삶의 기반을 상징하며, 그 위로 뻗어 오르는 모란의 줄기들은 생명력과 확장의 에너지를 전한다. 이는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라, 뿌리 깊은 삶 위에 피어나는 번영이라는 민화적 은유다. 정원숙의 모란은 과시하지 않는다. 색은 풍부하지만 소란스럽지 않고, 구도는 치밀하지만 답답하지 않다. 이는 전통 기법 위에 쌓아 올린 숙련의 결과이며, 동시에 현대 민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용히 제시한
K-민화 이성준 기자 | 소정희 작가의 작품 “세상만사 잊고 살게나” 속 호랑이는 위엄보다 여유가 먼저 보인다.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대는 산군山君이 아니라, 세상의 무게를 한 발짝 내려놓은 존재다. 민화 속 호랑이가 원래 지녔던 풍자와 해학의 전통은 이 작품에서 현대인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쉼의 상징’으로 되살아난다. 화면 속 호랑이는 몸을 틀어 앉은 채 한쪽 앞발을 내밀고 있다. 공격도, 경계도 아닌 제스처다. 마치 “그만 좀 애써도 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굽이진 꼬리는 긴장을 풀어낸 호흡처럼 둥글고, 표정에는 묘한 미소가 깃들어 있다. 힘의 과시가 아니라 힘을 내려놓을 줄 아는 경지가 이 작품의 핵심이다. 배경은 단순하다. 그러나 그 단순함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 생각이 잠시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소정희 작가는 전통 민화의 호랑이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오늘의 삶에 맞게 재해석한다. 바쁘고, 지치고, 끊임없이 비교당하는 시대 속에서 이 호랑이는 말한다. “세상만사, 잠시 잊고 살아도 괜찮다.” 이 작품의 미덕은 웃음이다. 가볍지만 얕지 않고, 익살스럽지만 가볍지 않다. 민화가 본래 수행했던 역할과 권력에 대한 풍자, 삶에 대한 위로, 웃음 속의 진실
K-민화 이성준 기자 | 백찬희 작가의 송학도는 설명이 필요 없는 그림이다. 소나무와 학이라는 상징은 이미 수백 년 동안 한국인의 삶 속에서 길상과 장수, 평안을 말해왔다. 이 작품은 그 오래된 언어를 다시 꺼내어, 오늘의 시선으로 조용히 건넨다. 소나무는 사계절 푸르름을 잃지 않는 절개와 생명력의 상징이다. 학은 고결함과 장수를 의미하며, 두 마리가 함께 등장할 때는 화합과 평안이라는 의미가 더해진다. 백찬희 작가는 이 익숙한 상징들을 과장하거나 해체하지 않는다. 대신 가장 정직한 자리, 가장 안정된 구도 속에 배치한다. 특히 두 마리 학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경쟁도 긴장도 없는 상태를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라, 우리가 바라는 삶의 태도에 대한 은유다. 빠르고 불안한 시대일수록, 이 그림은 ‘함께 오래 머무는 삶’이 무엇인지 되묻는다. 이 작품이 가진 미덕은 절제다. 색은 화려하지만 소란스럽지 않고, 형태는 섬세하지만 과시적이지 않다. 전통 민화가 지녔던 기원의 기능, 즉 그림을 통해 마음을 다독이고 삶을 축원하던 본래의 역할이 충실히 되살아난다. 송학도는 새해를 맞이하는 그림이자, 한 해를 살아가는 자세에 대한 조용한 제안이다. 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