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화 이성준 기자 | 호랑이는 언제나 강하다. 그러나 박현정 작가의 '송죽설호'가 보여주는 강함은 포효의 크기가 아니라 버티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눈발이 흩날리는 설경 속, 송죽 사이를 가르며 내려오는 이 설호雪虎는 위협보다 결기를 먼저 드러낸다. 이 작품에서 겨울은 배경이 아니다. 겨울은 시험이며, 설호는 그 시험을 통과하는 존재다. 눈은 온 화면을 덮되 시야를 가리지 않고, 소나무와 대나무는 휘어질지언정 꺾이지 않는다. 박현정 작가는 이 자연의 질서를 통해 호랑이의 성정性情을 규정한다. 강함은 돌진이 아니라 지속이며, 용기는 소란이 아니라 침착이라는 선언이다. 호랑이의 발걸음은 낮고 무겁다. 한 발 한 발이 산의 결을 읽듯 이어진다. 이는 민화의 전통적 호랑이가 가진 해학이나 과장의 영역을 넘어, 현실의 무게를 감내하는 존재로서의 호랑이다. 눈을 밟는 소리까지 들릴 듯한 묘사는 단순한 사실주의가 아니라, 시간의 밀도를 화면에 심어 넣은 결과다. 색채의 선택 또한 절제되어 있다. 설경의 백색은 과도하게 번지지 않고, 호피의 선은 또렷하되 과장되지 않는다. 송죽의 녹은 차갑게 살아 있고, 바위의 회색은 계절의 무게를 고스란히 전한다. 이는 기술의 과시가
K-민화 이존영 기자 | 봉황은 함부로 날지 않는다. 태평성대가 아니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군자가 다스리는 세상이 아니면 노래하지 않는다. 그래서 봉황은 k-민화에서 ‘권력’보다 먼저 품격의 상징으로 그려져 왔다. 김민주 작가의 '봉황도'는 이 오래된 상징을 오늘의 언어로 조용히 번역해낸 작품이다. 이 봉황은 위엄으로 군림하지 않는다. 날개를 크게 펼치지 않고, 소리를 높이지도 않는다. 대신 바위 위에 내려앉아 주변의 생명을 바라본다.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며, 곤충과 새들이 저마다의 궤적을 그리는 가운데 봉황은 중심에 있으되 중심을 주장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 그림의 첫 번째 미덕이다. 작품의 구성은 위로 치솟기보다 아래로 뿌리내린 질서를 따른다. 바위는 흔들림 없는 토대처럼 봉황을 받치고, 그 위에 피어난 모란과 매화는 계절과 덕목을 동시에 상징한다. 모란의 풍요와 매화의 절개가 한 화면에 공존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봉황은 화려함 위에 서는 존재가 아니라, 절제된 풍요 위에 머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봉황의 깃털은 특히 인상적이다. 녹청과 주홍, 백색과 금빛이 겹겹이 쌓였지만 과장되지 않는다. 이는 기술의 과시가 아니라, 오랜 수행 끝에 도달한
K-민화 이성준 기자 | 이 그림 앞에 서면 먼저 고요한 질서가 다가온다. 요란한 기교도, 감정을 앞세운 서사도 없다. 대신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오래된 약속처럼 견고한 균형이다. 조경선 작가의 '일월오봉도'는 ‘왕의 병풍’이라는 익숙한 틀을 빌려, 그보다 훨씬 근원적인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누가 중심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중심인가라는 질문이다. 일월오봉도는 본래 권력의 상징이었다. 해와 달, 다섯 봉우리, 소나무와 물이 질서는 왕을 우주의 중심에 놓기 위한 시각적 장치였다. 그러나 조경선의 화면에서 왕은 사라진다. 대신 남는 것은 질서 그 자체다. 위와 아래가 뒤집히고, 현실과 반영이 맞물리며, 하늘과 땅은 서로를 비춘다. 중심은 비어 있고, 그 자리에 우주의 리듬이 놓인다. 특히 수면水面을 가로지르는 반복의 파동은 인상적이다. 겹겹이 쌓인 물결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시간의 층위처럼 읽힌다. 흐르되 무너지지 않고, 반복되되 지루하지 않다. 이는 민화가 가진 가장 큰 미덕과 질서를 통한 안정을 현대적으로 번역한 결과다. 자연은 요동치지만, 그 요동 안에는 언제나 법칙이 있다. 색의 선택 또한 치밀하다. 짙은 남색의 하늘, 절제된 황토와 녹청, 그리
K-민화 이성준 기자 | 이혜원 작가의 '수복 백물도'는 화면을 가득 채운 수많은 기물과 상징을 통해, 우리가 잊고 살아온 ‘복의 본질’을 다시 묻는다. 이 그림은 부귀를 과시하지 않는다. 대신 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정직하게 펼쳐 보인다. 백물도는 말 그대로 수많은 물건이 등장하는 그림이다. 그러나 이 물건들은 시장의 진열품이 아니다. 책과 문방구는 배움의 시간을, 악기와 도구는 익힘의 세월을, 그릇과 생활 기물은 살아낸 하루하루를 상징한다. 이혜원 작가의 백물도는 물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흔적을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특히 ‘수복壽福’이라는 두 글자가 화면 전체를 감싸듯 배치된 점은 의미심장하다. 장수와 복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래 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복만 많아도 균형을 잃는다. 이 작품은 민화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진리를 다시 꺼내 놓는다. 복은 오래 쌓여야 깊어지고, 장수는 바르게 살아야 의미를 얻는다는 사실이다. 구조적으로 보아도 이 작품은 흥미롭다. 단단한 탁자 위에 올려진 백물은 무너지지 않는다. 질서가 있기 때문이다. 위에는 정신의 상징이, 아래에는 생활의 토대가 놓인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민화적 세계관의 정
K-민화 이성준 기자 | 이 그림에는 호랑이가 없다. 그러나 누구도 이 작품 앞에서 호랑이의 부재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은, 호랑이보다 더 호랑이 같은 기운이다. 이경아의 '호피도'는 형상을 지운 자리에서 본질만을 남긴 k-민화다. 호피虎皮는 단순한 무늬가 아니다. 조선의 민화에서 호피는 권위와 벽사僻邪, 그리고 두려움을 넘어서는 생존의 상징이었다. 왕의 좌정 아래 깔리던 호피, 장수의 용맹을 대신하던 호피는 ‘사냥된 짐승의 껍질’이 아니라, 제어된 힘의 표식이었다. 이경아는 바로 그 지점을 정확히 짚는다. 호랑이의 눈, 이빨, 발톱을 모두 지우고도, 힘은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작품 중앙을 따라 흐르는 대칭의 축은 인상적이다. 무작위처럼 보이는 점과 얼룩들은 실은 치밀한 리듬을 이루며, 중심을 기준으로 미묘한 균형을 유지한다. 이는 자연의 무늬를 그대로 베낀 것이 아니라, 자연이 가진 질서를 해석한 결과다. 야성은 혼돈이 아니라, 스스로의 법칙을 지닌 상태임을 이 작품은 말한다. 색감 또한 절묘하다. 황토에 가까운 바탕 위에 얹힌 검갈색의 무늬는 과하지 않으며, 오히려 오래된 시간의 결을 닮았다. 이는 ‘날카로운 포효’가 아니라, 침
K-민화 이성준 기자 | k-민화에서 정원은 늘 말이 없는 장소였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는 삶의 원칙이 숨 쉬고 있었다. 김건하 작가의 ‘화정도’는 그 오래된 침묵을 다시 불러낸다. 이 그림 속 정원에는 위계가 없다. 당근과 가지가 꽃보다 낮지 않고, 국화와 작약이 채소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 나비와 곤충은 장식처럼 머무르지 않고, 순환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이는 질서가 없는 세계가 아니라, 서열이 필요 없는 세계다. 민화는 원래 삶의 그림이었다. 김건하는 그 사실을 과장하지 않는다. 상서도, 길상도라는 이름으로 덧칠된 해석을 걷어내고, 생활의 본래 자리로 그림을 되돌린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눈을 압도하는 화려함 대신, 마음을 붙드는 균형이 있다. 당근은 땅속에서 자라난다. 보이지 않는 시간 동안 뿌리를 키운 뒤에야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낸다. 가지는 소리 없이 열매를 맺고, 꽃은 피되 스스로를 자랑하지 않는다. 김건하 작가의 화정도는 이 평범한 존재들의 태도를 통해 말한다. 삶의 중심은 늘 조용한 곳에 있다고. 그 위를 오가는 나비와 곤충은 잠시 머물다 떠난다. 그러나 그 짧은 체류가 있어 정원은 살아 움직인다. 먹고사는 문제와 아름다움은 이
K-민화 이성준 기자 | 그러나 그 침묵은 공백이 아니라, 오래 축적된 시간의 언어다. 이진경 작가의 ‘백학도’에서 학은 날거나 머물며, 혹은 다시 날아오를 준비를 한다. 이 장면에는 과장된 상징도, 설명을 요구하는 장치도 없다. 대신 화면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기다림의 품격이다. 소나무는 굽이치며 서 있다. 바람과 세월을 견뎌온 몸의 기록이다. 그 곁을 흐르는 물과 바다는 쉼 없이 반복되는 삶의 리듬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 위로 흰 학들이 날아오른다. 이 비행은 도약이 아니라 순환이다. 떠남과 귀환, 시작과 마무리가 하나의 호흡으로 이어진다. 백학은 장수를 뜻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학은 단순한 길상의 상징을 넘어선다. 학은 서두르지 않는다. 무리를 지어도 앞서려 하지 않고,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 이는 오늘의 사회가 잊고 지낸 태도에 대한 조용한 제안이다. 빠름이 능력이 되고, 과시가 성취로 오해되는 시대에, 이진경의 학은 속도의 윤리를 묻는다. 색은 절제되어 있고, 선은 단정하다. 파도의 반복과 산의 굴곡, 구름의 흐름은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다.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전체를 이룬다. 이것이 민화가 오래도록 지켜온 세계관이다. 경쟁이 아니
K-민화 이존영 기자 | K-민화 속 용은 언제나 구름 속에 몸을 숨긴 채, 세상의 기운이 무르익는 순간을 기다린다. 경도영의 ‘운룡도’는 바로 그 ‘기다림의 위엄’을 정면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작품을 가득 메운 구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켜켜이 쌓인 운문雲紋은 시간의 층위이자, 세상이 겪어온 수많은 굴곡의 기록처럼 보인다. 그 구름 사이로 드러나는 용의 몸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머리와 발톱, 비늘의 일부만이 보일 뿐이다. 이는 힘의 부족이 아니라 절제된 선택이다. 진정한 권능은 과시되지 않고, 준비된 순간에만 모습을 드러난다는 민화의 오래된 지혜가 이 화면에 스며 있다. 경도영 작가의 용은 포효하지 않는다. 입을 벌리고 있으되, 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는 폭발 직전의 침묵, 혹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존재의 여유다. 눈빛은 예리하지만 흔들림이 없고, 비늘의 묘사는 치밀하되 과장되지 않는다. 장식보다 구조가 먼저 보이는 이 용은, 상징 이전에 사유의 대상으로 우리 앞에 선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구름과 용의 관계다. 구름은 용을 가두는 장벽이 아니라, 용의 일부처럼 호흡을 함께한다. 이는 권력과 환경, 능력과 시대가 분리될 수 없다
K-민화 이성준 기자 | 겨울을 밀어내는 함성도, 계절을 바꾸는 선언도 없이, 그저 어느 날 문득 살아 있는 기운으로 스며든다. 유현옥 작가의 ‘봄이야기’는 바로 그 조용한 도착을 그린 그림이다. 그림 속 두 마리의 학은 서로를 향해 서 있다. 날아오르지도, 포효하지도 않는다. 다만 같은 가지 위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이는 부부의 상징이자, 신뢰의 형상이며, 오래된 시간 끝에 도달한 평온의 자세다. 민화에서 학은 장수와 고결함을 뜻하지만, 이 작품의 학은 그 상징을 넘어 관계의 품격을 보여준다. 학이 서 있는 가지에는 매화가 피어 있다. 매화는 겨울 끝자락에 가장 먼저 피는 꽃이다. 추위를 견딘 자만이 봄을 부른다는 동양적 세계관이 이 작은 꽃에 담겨 있다. 유현옥은 매화를 화려하게 부각시키지 않는다. 대신 가지의 굴곡과 여백 속에 꽃을 흩뿌리듯 배치한다. 이는 봄이 ‘드러나는 사건’이 아니라, 서서히 밝혀지는 상태임을 말해준다. 색채 또한 절제되어 있다. 학의 깃털은 청·백·황의 미묘한 층위로 겹쳐지고, 배경은 과하지 않은 황토빛으로 화면 전체를 감싼다. 이 색의 선택은 봄을 축제처럼 소비하지 않고, 시간의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가깝다. 민화 특
K-민화 이성준 기자 | 문순분 작가의 ‘모란화조도’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진짜 복은 외침이 아니라 깃듦의 방식으로 삶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화면 중앙에 뿌리를 내린 모란은 단정하면서도 당당하다. 모란은 예로부터 부귀와 영화의 상징이었으나, 이 작품 속 모란은 과장된 화려함 대신 균형과 절제의 미를 택한다. 꽃잎은 풍성하지만 흐트러지지 않고, 색은 깊지만 탁하지 않다. 이는 부귀를 욕망의 대상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삶의 결실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가깝다. 모란 가지 위에 앉은 한 쌍의 새는 이 그림의 또 다른 주제다. 새는 기쁨과 길상吉祥을 상징하지만, 여기서는 소식을 전하는 존재라기보다 이미 도착한 평안의 증거처럼 보인다. 서로를 향해 몸을 기울인 두 새의 자세는 경쟁이 아닌 공존, 긴장이 아닌 신뢰를 말한다. 부귀는 홀로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머물 때 비로소 온전해진다는 민화적 세계관이 이 작은 장면에 응축되어 있다. 배경의 여백 또한 인상적이다. 모란과 새를 둘러싼 공간은 비어 있으되 허전하지 않다. 이는 동양 회화가 지닌 여백의 철학, 즉 비움으로써 채우는 미학을 충실히 따른 결과다. 관람자는 그 여백 속에서 각자의 삶을 대입하게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