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화 이존영 기자 | 민화에서 물고기는 늘 ‘과정’의 상징이었다. 아직 하늘을 날지 못하지만, 이미 하늘을 향해 몸을 틀고 있는 존재이다. 정선영 작가의 '금입은어변성령도'은 그 결정적 순간을 원형의 우주 속에 봉인한다. 검은 바탕 위에 금빛으로 떠오른 원은 경계이자 약속이다. 이 원 안에서 물고기는 단순한 생물이 아니다. 파도를 가르는 몸짓은 수행의 반복을 닮았고, 비늘 하나하나는 시간의 층위를 이룬다. 물결은 쉼 없이 겹치며, 용문을 향한 의지는 흔들림 없이 축적된다. 여기서 ‘변變’은 돌연한 기적이 아니라 견딘 시간의 합이다. 주목할 것은 입에서 피어오르는 구름과 불꽃의 결이다. 아직 완전한 용의 형상은 아니지만, 이미 숨은 바뀌었다. 이는 결과를 앞서 보여주지 않는 민화의 미덕이다. 대신 가능성이 현실을 밀어 올리는 압력을 그린다. 그래서 이 그림의 긴장은 과장되지 않고, 도약은 소란스럽지 않다. 금입金入의 선택 역시 의미심장하다. 금은 부의 표식이 아니라, 인내가 끝내 획득한 광채다. 검은 바탕과의 대비는 ‘빛나기 위해 어둠이 필요하다’는 오래된 진실을 환기한다. 원형 구도는 시작과 끝을 지우며, 도약이 곧 순환임을 말한다. 오르는 자는 다시 흐
K-민화 이존영 기자 | 해와 달은 원래 하늘의 것이었다. 그러나 민화는 종종 그것들을 땅으로, 삶의 자리로 내려앉힌다. 김정연 작가의 '일월수상도'에서 해와 달은 더 이상 먼 천체가 아니다. 나무의 꼭대기에 머물며, 생명의 시간과 호흡을 함께한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수壽의 나무’가 서 있다. 깊은 뿌리와 굳건한 몸통은 세월을 견딘 존재의 형상이고, 그 위로 펼쳐진 잎들은 축적된 생의 결과다. 해와 달은 그 위에 겹쳐지며 낮과 밤, 시작과 끝을 나무 한 몸에 포개 놓는다. 이는 장수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순환의 완성임을 말한다. 상단을 채우는 오방색 구름은 역동적이되 과하지 않다. 구름은 흐르며 바뀌지만, 나무는 흔들리지 않는다. 변화와 지속의 균형이 화면 전체를 지탱한다. 산은 낮고 반복되며, 물결은 고요하게 이어진다. 모든 요소가 자기 자리를 지킬 때, 세계는 소란 없이 오래 간다. 김정연 작가의 색은 선명하지만 절제되어 있다. 강렬한 원형의 해와 달은 시선을 붙잡되, 나무의 생명력을 압도하지 않는다. 이는 중심이 한 곳에 쏠리지 않는 민화의 미덕이다. 중심은 위가 아니라 관계 속에 있다. 오늘 우리는 장수를 숫자로 계산한다. 그러나 '일월수상도'는
K-민화 이존영 기자 | 일월오봉도는 왕의 뒤에 놓인 그림이었지만, 그 본질은 권좌가 아니라 질서의 중심이었다. 이미형 작가의 '황금일월오봉도'는 이 오래된 도상을 ‘황금’이라는 선택으로 다시 세운다. 금빛은 장식이 아니라 선언이다. 흔들리는 시대에 중심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답변이다. 검은 바탕 위에 떠오른 원형의 세계는 닫힌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집중된 우주다. 해와 달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균형을 이룬다. 산은 높되 과시하지 않고, 물은 흐르되 넘치지 않는다. 모든 요소는 자기 몫의 자리를 지키며 침묵의 합의를 이룬다. 이 합의가 바로 나라의 기틀이었고, 오늘의 삶에도 필요한 기준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 금빛은 ‘부’의 상징이 아니라 시간의 응축으로 읽힌다. 수없이 겹친 선과 결 위에 올라앉은 금은, 빠른 성취가 아닌 오래 견딘 결과의 색이다. 검은 바탕은 빛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대비가 아니라, 빛이 태어나기까지의 밤이다. 밤을 통과한 빛만이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화면은 말없이 증명한다. 원형 구도는 시작과 끝을 지운다. 왕의 자리는 비어 있고, 대신 자연의 순환이 자리를 채운다. 이는 권위의 공백이 아니라, 권위의 재정의다.
K-민화 이존영 기자 | 바다는 늘 흔들린다. 그러나 흔들림 위에 선 존재가 있다. 신지연 작가의 '해응영일도'는 바로 그 장면에서 시작된다. 파도가 부서지는 절벽 끝, 독수리는 날지 않는다. 대신 선다. 이 그림에서 비상은 행동이 아니라 태도다. 해가 떠오르는 수평선은 희망의 은유이되, 감상적이지 않다. 붉은 태양은 응시의 대상이고, 독수리는 그 앞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다. 민화 속 영웅은 언제나 과장된 힘을 갖지 않는다. 다만 자기 자리를 정확히 알고, 흔들림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 '해응영일도'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독수리는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결기의 형상이다. 파도는 시련을, 바위는 책임을 뜻한다. 그 위에 선 독수리는 ‘지금’의 무게를 견디는 존재다. 이 장면에서 K-민화는 과거의 길상吉祥을 오늘의 태도로 바꿔 놓는다. 희망은 도망치지 않고, 현실 위에 선다. 신지연 작가의 작품은 절제되어 있다. 색은 낮고, 선은 분명하다. 이는 감정을 부풀리기보다 판단을 또렷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그림은 위로보다 각성을 택한다. “날아오를 것인가”가 아니라, “지금 서 있을 수 있는가”를 묻는다. K-민화는 삶의 가장 험한 자리에서도 품격을 잃지
K-민화 이존영 기자 | '태평성시도'는 조용히 묻는다. “태평한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 그림에는 영웅이 없다. 대신 사람이 있다. 땀 흘리는 사람, 웃는 사람, 다투는 사람, 건너는 사람, 나르는 사람. 송정혜 작가의 '태평성시도'는 ‘이상 국가’가 아니라 ‘작동하는 사회’를 그린 그림이다. 태평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축복이 아니라, 매일의 노동과 관계가 쌓여 만들어지는 풍경임을 이 그림은 말한다. 화면은 빽빽하지만 혼란스럽지 않다. 다리는 제 역할을 하고, 물은 흐르며, 장터는 소란 속에서도 질서를 잃지 않는다. 이 질서의 중심에는 권력이 아니라 생활이 있다. 민화적 시선은 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는다. 같은 눈높이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을 따라간다. 특히 이 작품에서 인상적인 것은 ‘협력의 장면들’이다. 통나무를 나르는 손, 다리 아래서 물을 가르는 몸, 장터에서 음식을 나누는 얼굴들. 태평은 정적靜的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며 조율되는 역동적 균형이다. 그래서 이 그림은 평화롭지만 정지돼 있지 않다. K-민화는 전통을 반복하지 않는다. 오늘의 삶을 비추는 거울로 전통을 다시 사용한다. '태평성시도'는 현대 사회에 가장 필요한 질문을
K-민화 이존영 기자 | K-민화와 민화한복이 만나는 ‘세화 특별전’이 오는 2026년 1월 1일부터 5일까지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새해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던 전통 세화歲畵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K-민화 전시와 민화한복 패션, 문화 퍼포먼스를 아우르는 융복합 특별전으로 기획됐다. 특히 세화 특별전 “어서 오세요” “벽사초복僻邪招福·服”을 주제로, 민화가 지닌 민간적 상징성과 한복의 조형미를 결합해 전통 예술이 오늘날 어떻게 살아 움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번 세화 특별전은 K-민화를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닌, 입고 걷고 경험하는 K-컬처 콘텐츠로 확장한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전시의 의미를 담아, 담화총사는 「K-민화가 지구촌 민간民間 시대를 연다」라는 제목의 기명 칼럼을 통해 세화전이 지닌 문화적·외교적 함의를 짚는다. = 동영상 =
K-민화 이존영 기자 | 이 그림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소박한 민화’라는 고정관념에 머물 수 없다. 한현숙의 작가의 '비파공작'은 민화가 지닌 길상성에 당당한 아름다움과 존재의 위엄을 동시에 불어넣는다. 작품을 가득 채운 공작은 숨기지 않는다. 고개를 들고 서 있는 공작의 자세는 과시가 아니라 자각이다. 자신의 빛을 아는 존재만이 이토록 고요하게 서 있을 수 있다. 공작은 예로부터 부귀, 영화, 덕성을 상징하는 길상 조류였지만, 이 작품에서 공작은 상징을 넘어 완성된 존재의 태도로 등장한다. 비파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열매는 풍요와 다산, 결실의 의미를 품고 있다. 이 풍경은 우연한 장식이 아니다. 비파는 긴 시간의 축적 끝에 맺히는 열매다. 즉, 이 그림의 화려함은 하루아침에 얻어진 것이 아니라, 시간과 인내의 결과임을 암시한다. 공작의 찬란한 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색채의 운용은 절제 속의 화려함이다. 녹청과 군청, 황금빛이 충돌하지 않고 서로를 살린다. 이는 K-민화가 지닌 미덕, 즉 ‘조화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결과다. 화려하지만 천박하지 않고, 장식적이지만 가볍지 않다. '비파공작'은 말한다. 진짜 복은 소리 없이 다가오는 것이 아
K-민화 이존영 기자 | 유성만 작가의 이 그림 앞에 서면 먼저 속도가 느려진다. 유성만 작가의 '休휴식'은 무엇을 보여주기보다, 보는 이를 잠시 내려놓게 만드는 그림이다. 숲은 빽빽하지만 답답하지 않다. 나무들은 서로 기대지 않으면서도 같은 방향으로 서 있고, 화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은은한 빛이 스며 나온다. 이 빛은 태양도, 인공의 조명도 아니다. 마치 숲 자체가 숨을 쉬며 내뿜는 호흡처럼 느껴진다. 쉼이란 외부에서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존재가 제 자리를 회복할 때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상태임을 이 작품은 조용히 말한다. 화면 속 작은 새 한 마리는 이 숲이 정지된 공간이 아님을 알려준다. 모든 것이 멈춘 듯 보이지만, 생명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이 ‘휴休’는 정적이 아니다. 한자 ‘休’가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 쉼을 얻는 형상인 것처럼, 이 그림의 쉼은 자연에 몸을 맡긴 채 다시 살아갈 힘을 고르는 과정이다. 유성만 작가의 숲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그 절제된 색과 반복되는 수직의 리듬은 마음의 파동을 가라앉힌다. 현대 사회가 강요하는 쉼은 종종 소비의 형태를 띠지만, 이 작품은 말한다. 진짜 쉼은 아무것도 더하지 않는 상태, 그저 존재로
K-민화 이존영 기자 | 칸초아리나는 벨라루스에서 온 유학생으로, 한국에 머무는 동안 K-민화를 익히고 배우며 전통 회화가 지닌 상징과 정신성을 자신의 조형 언어로 흡수해 온 작가다. 그가 그린 k-민화는 늘 큰 것을 그리면서도, 진실은 작은 곳에 숨겨왔다. '도마뱀 나들이'는 그 전통을 가장 섬세한 방식으로 이어간다. 작품 속의 주인공은 위엄도 상징도 아닌, 일상 속의 작은 생명이다. 그러나 이 작음은 미약함이 아니라, 세계를 지탱하는 정확한 비중으로 제시된다. 괴석 위에 올라선 도마뱀의 자세는 느긋하고 단정하다. 포식도 도주도 아닌, 관찰의 태도다. 눈은 크게 열려 있으되 공격적이지 않고, 몸은 길게 늘어졌으나 흐트러지지 않는다. 이 안정감은 자연과의 거리 조절에서 나온다. 도마뱀은 바위를 정복하지도, 꽃을 짓밟지도 않는다. 그저 그 사이에 정확히 놓여 있다. 괴석의 절단된 면과 그 틈에서 피어난 꽃들은 대비를 이룬다. 거침과 부드러움, 무게와 향기. 그러나 둘은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증명한다. 상처 난 돌이 있어 꽃이 더 선명해지고, 꽃의 존재로 돌의 거칠음이 의미를 얻는다. 이는 자연의 윤리와 공존은 타협이 아니라 배치의 문제를 시각적으로
K-민화 이존영 기자 | 반차도는 행렬의 그림이지만, 실은 국가가 작동하는 방식을 그린 지도다. 김선희 작가 의 '왕조 왕세자 책례반차도권'은 화려한 의식의 기록을 넘어, 한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기까지 사회가 어떻게 스스로를 정렬하는지를 또렷이 보여준다. 이 긴 두루마리 속에서 주인공은 단 한 사람이 아니다. 깃발과 의장, 악기와 기물, 보폭을 맞춘 사람들 하나하나가 주체다.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는 속도, 역할을 넘지 않는 선, 그 절제가 이 행렬의 품격을 만든다. 책례는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공동체가 합의한 질서의 확인이다. 김선희 작가는 반차도의 미덕인 ‘거리감’을 정확히 살린다. 인물들은 작게 그려지지만, 관계는 크게 보인다. 왕세자의 자리는 중앙이되 과장되지 않고, 의장물은 권위를 드러내되 폭력적이지 않다. 이 그림에서 힘은 소리치지 않는다. 정확히 제자리를 지킬 때 힘은 가장 크다는 사실을 화면이 증명한다. 색채와 배열은 반복을 통해 안정감을 만든다. 같은 옷, 같은 기물, 같은 간격의 행렬은 획일이 아니라 신뢰의 리듬이다. 누구도 예외가 되지 않는 구조 속에서만 즉위는 정당성을 얻는다. 그래서 이 반차도는 축제가 아니라, 국가의 약속문처럼 읽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