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화 강경희 기자 | 한국민화협회 송파지회 회원전 「우리들의 민화 이야기 4」가 2026년 1월 7일부터 13일까지 경인미술관 제3관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는 송파지회의 네 번째 정기전으로, 전통 민화의 정신을 현대적 감각으로 확장해 온 지회의 여정과 성과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였다.
K-민화 강경희 기자 | 한국민화협회 송파지회 회원전 「우리들의 민화 이야기 4」가 2026년 1월 7일부터 13일까지 경인미술관 제3관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는 송파지회의 네 번째 정기전으로, 전통 민화의 정신을 현대적 감각으로 확장해 온 지회의 여정과 성과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였다. 송파지회는 2021년 지회 창설 이후 ‘전통에 기반한 동시대적 민화’를 기치로 삼아 꾸준한 창작과 교육, 전시 활동을 이어왔다. 민화가 오늘의 삶과 어떻게 호흡할 수 있는지를 질문하며, 국적 있는 민화—한국적 미감과 상징을 분명히 지닌 민화의 가능성을 실천으로 증명해 왔다. 그 결과 매년 각종 공모전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었고, 2025년 제18회 대한민국 민화 공모대전에서는 대상과 장려상을 포함해 총 31명의 입상자를 배출하는 성과를 이뤘다. 이번 전시의 중심에는 송파지회장 조민(蓮松, CHO MIN) 작가가 있다. 숙명여대 미술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조민 작가는 현재 한국민화협회 대외홍보부회장과 송파지회장을 맡아 창작과 조직 운영을 병행하고 있다. 그는 전통 민화의 맥을 존중하되, 색감과 상징의 힘을 오늘의 감성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전시에 출품된
K-민화 이성준 기자 | 글자는 언제부터 예술이 되었을까. 혹은 예술은 언제부터 글자를 필요로 했을까. 정주연 작가의 K-그라피 앞에 서면, 이 오래된 질문은 더 이상 학술적 물음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서 숨 쉬는 감각이 된다. 화면 위에 놓인 문장은 읽히기보다 먼저 다가오고, 의미는 해석되기보다 먼저 체온을 가진다. “새로운 봄의 시대를 다시, 보내는 나라를...”이 문장은 선언이 아니라 예감이다. 획은 단정하지 않고, 여백은 침묵하지 않는다. 붓의 움직임은 설명을 거부하며, 감정의 속도로 흘러간다. 정주연의 K-그라피는 ‘잘 쓴 글씨’가 아니라 잘 살아 있는 문장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 주목할 점은 글자가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이다. 상단의 굵고 강한 문장은 시대를 부르는 목소리처럼 떠 있고, 하단으로 길게 떨어지는 서체는 마치 인간의 사유가 땅으로 뿌리내리는 과정처럼 보인다. 글자는 더 이상 평면에 놓이지 않는다. 서 있는 존재, 혹은 걸어 내려오는 시간이 된다. 배경 역시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도시의 실루엣 위로 번지는 여명과 노을의 색감은 오늘의 한국 사회, 그리고 그 안에서 다시 시작되기를 갈망하는 개인의 내면을 상징한다. 이는 K-그라피가
K-민화 이성준 기자 | 이명순 작가의 K-그라피 앞에 서면, 우리는 먼저 읽지 않게 된다. 읽으려는 마음이 먼저 내려앉는다. 이 작품은 글씨가 아니라 시간의 자세로 우리를 맞는다. 연한 하늘빛 여백 위로 번지는 노란 산수유의 기척. 그 가지는 뻗지 않고 머문다. 머무는 동안, 꽃은 이미 말을 끝냈다는 듯 조용하다. 이 고요 속에서 글자는 서두르지 않는다. 획은 빠르지 않고, 문장은 설명하지 않는다. 이명순 작가의 K-그라피는 무엇을 말하기보다 어떻게 기다리는가를 보여준다. 글씨는 보통 결론을 향해 달린다. 그러나 이 작품의 문장들은 도착을 미루는 법을 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앞서지 않으며, 서로를 밀치지 않는다. 마치 “지금은 이것으로 충분하다”라고 속삭이듯... 산수유는 겨울 끝에서 가장 먼저 피지만, 자신을 봄이라 주장하지 않는다. 그 겸손한 선행先行의 태도가 이 작품의 문장과 닮아 있다. 꽃은 먼저 피되, 먼저 말하지 않는다. 글은 먼저 쓰였으되, 먼저 다가서지 않는다. 여기서 K-그라피는 디자인의 영역을 넘어 윤리의 언어가 된다. 획의 굵기에는 힘이 있지만 과시가 없고, 먹의 번짐에는 감정이 있으되 과잉이 없다. 말하되 상처내지 않는 문장, 보이
K-민화 강경희 기자 | 매화는 늘 가장 먼저 온다. 눈이 채 녹지 않은 자리에, 바람이 아직 시린 날에, 말없이 먼저 피어 있다. 은새 백인복 작가의 ‘청매화’는 바로 그 ‘먼저 도착한 마음’을 화면에 옮겨 놓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매화는 단순한 소재가 아니다. 굽이진 가지는 시간을 견딘 삶의 궤적이고, 담담한 먹의 농담은 말로 다 하지 못한 사연이다. 그 위에 얹힌 박노해 시인의 시구는 글이 아니라 호흡처럼 놓여 있다. 읽는 순간보다, 읽고 난 뒤에 더 오래 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향기 날아오면 시린 바람결에 청매화가 피다. 그 향기 날아오면 내가 오는 줄 아소서 그 눈물 흘리면 그대인 줄 알 테니” 이 문장은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알아보라고 말한다. 향기로, 눈물로, 기척으로, 은새 백인복 작가의 K-그라피는 글씨를 쓰는 것이 아니라 글씨가 피어나게 한다. 획은 힘을 과시하지 않고, 여백은 비어 있음으로 말한다. K-그라피가 단순한 서예나 캘리그래피가 아닌 이유는, 이처럼 글과 그림, 시와 호흡, 전통과 감각이 하나의 장면으로 *원융圓融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 ‘청(靑)’은 색이 아니라 태도다. 성숙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더 이상 붉
K-민화 이성준 기자 | 박소현 작가의 이 작품 앞에 서면, 우리는 설명보다 먼저 상태에 들어선다. 차갑고, 깊고, 말이 없는 상태. 이 작품은 감정을 설득하지 않는다. 대신 감정을 잠기게 한다. 화면을 가득 채운 청록의 번짐은 풍경이 아니라 마음의 온도다. 파도도, 수평선도 없다. 그럼에도 분명히 이것은 바다다. 왜냐하면 바다는 늘 이렇게 시작되기 때문이다. 형상이 아니라, 감정으로. 작품 중앙을 가르는 굵은 필획. “겨울바다.” 이 글자는 제목이면서 동시에 버팀목이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더 깊이 내려간 한 줄의 중심. 그 아래 이어지는 문장은 시가 아니라 고백에 가깝다.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일 때 얼마나 좋을까 누구도 겨울바다 속으로 침몰해버리면 내 쓸모없는 생각들이 모두...? 여기서 문장은 끝나지 않는다. 일부러 끝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문장은 독자가 자신의 마음으로 마침표를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소현 작가의 K-그라피는 글씨를 통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버리게 만드는 글씨다. 읽다 보면 뜻을 이해하기보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기억이 올라온다. 용서하지 못했던 순간, 붙잡고 있었던 생각, 차갑게 식히지 못한 감정들... 겨울바다는
K-민화 이성준 기자 | 이 작품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묻지 않게 된다. 이것이 글씨인가, 그림인가를, 김나은 작가의 K-그라피는 그 질문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글자는 더 이상 의미를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고, 그림은 더 이상 장면을 재현하는 대상이 아니다. 이 작품에서 글과 그림은 함께 숨 쉬며 하나의 생명이 된다. 작품을 가로지르는 두 마리의 금붕어는 부유하듯 헤엄치는 이 생명체는 민화의 전통적 길상吉祥을 닮았지만, 그 표현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비늘 하나하나에 담긴 색의 농담은 오늘의 감각이고, 유영하는 방향에는 규칙도, 구속도 없다. 그 옆에 놓인 글씨는 ‘읽히기 위해’ 쓰이지 않았다. 의미를 강요하지 않고, 해석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획은 물결처럼 번지고, 먹은 숨결처럼 스며든다. 이 글씨는 말한다기보다 살아 있다고 해야 옳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캘리그래피가 아니다. 장식적 문자도 아니다. 김나은 작가의 작업은 K-그라피의 본질에 정확히 닿아 있다. K-그라피란 무엇인가. 글씨를 예쁘게 쓰는 기술이 아니라, 한국적 정신과 감각을 붓의 행위로 드러내는 문화 언어다. 문자와 회화, 사유와 감정, 전통과 현재가
K-민화 이성준 기자 | 이 작품은 감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마주함을 요구한다. 무속인 아랑이 그려낸 이 푸른 용은 장식적 상징도, 길상의 도상도 아니다. 이는 부름에 응답해 나타난 존재, 다시 말해 주술적 호출의 결과물이다. 작품 속 용은 고요하지 않다. 구름을 가르며 출현한 푸른 비늘의 몸체는 상승의 형상을 띠고 있지만, 그 움직임에는 긴장과 각성이 동시에 흐른다. 전통 회화에서 용은 왕권과 복을 상징했으나, 아랑의 용은 그보다 훨씬 원초적이다. 이 용은 복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질서를 흔들고 기운을 전환하는 존재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용의 시선이다. 정면을 응시하지 않고, 붉은 구슬을 향해 몸을 틀고 있다. 이 구슬은 흔히 여의주로 해석되지만, 아랑의 세계관에서는 단순한 소망의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집중된 기운의 핵, 혹은 인간과 세계를 잇는 매개체에 가깝다. 구슬 주위로 흩어지는 붉은 기운은 축복이 아니라 경고처럼 읽힌다. 다루지 못한 힘은 곧 화火가 된다는 무속적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구름 또한 중요하다. 이 작품에서 구름은 배경이 아니라 장막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 사이를 가르는 경계이자, 신령이 드나드는 통로다.
K-민화 강경희 기자 | 이 k-그라피 작품의 첫 문장은 선언에 가깝다. 「청하淸河를 읽다. 」, 맑음은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성파 작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 가능성은 조건이 아니라 태도이며, 세상과 관계 맺는 하나의 방식임을 글과 획으로 증명해 보인다. “사람은 맑은 사람에게 끌리고, 바람은 맑은 강물로 내려온다.” 작품 속 이 문장은 미문美文이기 이전에 삶의 법칙처럼 읽힌다. 계산과 소음이 가득한 시대일수록, 사람은 더욱 맑은 곳을 향해 이동한다. 권력이나 요란한 언어가 아니라, 스스로 흐르며 낮아지는 존재에게 마음은 끌린다. 성파의 글씨는 바로 그 ‘낮아짐의 힘’을 품고 있다. 이어서 작가는 말한다. “이익을 취함에 스스로 부끄럼 없으니 맑고 세상살이 물처럼 흐르니 이 또한 맑도다.” 여기서 ‘맑음’은 도덕적 완벽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끄러움을 아는 감각, 그리고 집착하지 않고 흘러가는 태도가 맑음을 만든다고 말한다. 이 문장은 오늘의 사회를 향한 조용하지만 분명한 질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취하면서도 부끄럽지 않은가. 우리는 어디까지 흐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단에 병기된 한문 구절은 작품의 정신을 더욱 단단히 붙든다. 人濁爲引以淸心
K-민화 이성준 기자 | 우리는 묻지 않는다. 이것이 글씨인가, 그림인가를. 우리는 선언한다. 이것은 문화다. 1. K는 국기(國旗)다. K는 알파벳의 한 글자가 아니다. K는 한국이라는 시간의 축적이며, 역사·정신·손의 기억이 응축된 상징이다. K는 더 이상 수식어가 아니다. K는 중심이며, 출발점이며, 세계와 마주하는 한국의 얼굴이다. 우리는 K를 앞에 둔다. 그것은 자부심이 아니라 책임이기 때문이다. Graphy는 언어다. Graphy는 쓰는 행위가 아니다. Graphy는 사유가 선으로 드러나는 방식이다. 문자 이전의 선, 말보다 먼저 태어난 형상, 인간이 생각을 남겨온 가장 오래된 언어, 그리고 Graphy는 기록이 아니라 표현이며, 정보가 아니라 존재의 흔적이다. K-Graphy는 문화 선언이다. K-Graphy는 장르가 아니다. K-Graphy는 기법이 아니다. K-Graphy는 스타일이 아니다. K-Graphy는 한국적 사유와 손의 언어가 결합된 문화 선언이다. 우리는 글과 그림을 나누지 않는다. 우리는 경계를 묻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이 선에 정신이 있는가. 이 획에 시대가 담겨 있는가. K-그라피는 모두를 포괄한다. 대나무 붓으로 쓰는 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