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화 이존영 기자 | 반차도는 행렬의 그림이지만, 실은 국가가 작동하는 방식을 그린 지도다. 김선희 작가 의 '왕조 왕세자 책례반차도권'은 화려한 의식의 기록을 넘어, 한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기까지 사회가 어떻게 스스로를 정렬하는지를 또렷이 보여준다. 이 긴 두루마리 속에서 주인공은 단 한 사람이 아니다. 깃발과 의장, 악기와 기물, 보폭을 맞춘 사람들 하나하나가 주체다.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는 속도, 역할을 넘지 않는 선, 그 절제가 이 행렬의 품격을 만든다. 책례는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공동체가 합의한 질서의 확인이다. 김선희 작가는 반차도의 미덕인 ‘거리감’을 정확히 살린다. 인물들은 작게 그려지지만, 관계는 크게 보인다. 왕세자의 자리는 중앙이되 과장되지 않고, 의장물은 권위를 드러내되 폭력적이지 않다. 이 그림에서 힘은 소리치지 않는다. 정확히 제자리를 지킬 때 힘은 가장 크다는 사실을 화면이 증명한다. 색채와 배열은 반복을 통해 안정감을 만든다. 같은 옷, 같은 기물, 같은 간격의 행렬은 획일이 아니라 신뢰의 리듬이다. 누구도 예외가 되지 않는 구조 속에서만 즉위는 정당성을 얻는다. 그래서 이 반차도는 축제가 아니라, 국가의 약속문처럼 읽힌
K-민화 김학영 기자 | 민화는 늘 두 개의 시간을 산다. 하나는 오래된 기억의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을 견디는 생활의 시간이다. 강경희 작가의 ‘그리운 금강산’은 그림이기 이전에 기억의 지형이다. 눈으로 보는 풍경이 아니라, 마음이 되돌아가는 자리다. 겹겹이 솟은 산세는 높이를 다투지 않는다. 이 산들은 경쟁하지 않고,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다. 대신 마음의 깊이를 한 층 한 층 쌓아 올린다. 봉우리마다 안개가 머무는 까닭은 아직 말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산허리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 안개는 흐릿함이 아니라, 보류된 고백이다. 화면 아래 낮게 놓인 집들과 굽이치는 물길은 인간의 자취를 겸손하게 둔다. 사람은 작고, 산은 크다. 이 질서는 분명하다.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이며, 인간은 그 곁을 지나가는 존재일 뿐이다. 강경희의 금강산에서 산은 침묵으로 말하고, 사람은 그 침묵을 배우듯 서 있다. 금강산은 언제나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리움을 과장하지 않는다. 절제된 색채와 넉넉한 여백은 상실의 감정을 소리 내어 울리지 않고, 오히려 오래 간직하게 만든다. 이 산은 정치가 아니고, 이 산은 구호가 아니다. 돌아
K-민화 이존영 기자 | 화병도는 ‘꽂는’ 그림이 아니다. 정유희 작가의 '화병도'는 복을 장식처럼 꽂아두는 대신, 삶의 중심에 단단히 묶어두는 방식을 택한다. 작품 중앙의 화병은 끈으로 매여 있고, 그 위로 모란과 국화, 연꽃이 질서 있게 피어난다. 이는 우연한 풍요가 아니라, 관리된 복福의 선언이다. 이 화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매듭이다. 민화에서 매듭은 결속과 지속의 상징이다. 흘러가지 않도록 묶고,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두는 행위. 정유희 작가는 이 매듭을 통해 묻는다. “당신의 복은 어디에 묶여 있는가.” 복은 얻는 것이 아니라 지켜내는 것임을, 이 그림은 조용히 말한다. 모란은 부귀를, 국화는 절개를, 연꽃은 정화를 뜻한다. 이 꽃들은 경쟁하지 않는다. 크기와 색은 다르지만, 서로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는다. 꽃의 위계가 아니라 관계의 질서가 화면을 지배한다. 이는 K-민화가 전통에서 현재로 옮겨오며 획득한 중요한 감각과 공존의 미학이다. 화병 양옆의 석류와 복숭아 또한 의미심장하다. 다산과 장수를 상징하는 이 과실들은 화병을 보호하듯 배치되어, 복이 ‘피어나는 것’에서 ‘이어지는 것’으로 확장됨을 암시한다. 색의 절제, 의미의 확장은
K-민화 이존영 기자 | 책은 쌓여 있으나 무겁지 않고, 지식은 가득하되 위압적이지 않다. 이미형 교수의 ‘책거리 10폭 병풍’ 앞에 서면 먼저 느껴지는 감각은 질서와 평정이다. 병풍을 가득 채운 서책과 기물들은 과시가 아니라 생활의 리듬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 화면에서 학문은 경쟁의 도구가 아니라 삶을 정돈하는 방식이다. 전통 책거리의 핵심은 ‘많음’이 아니라 ‘바름’에 있다. 이미형 교수는 이 원칙을 정교하게 복원하면서도, 현대의 시선으로 재구성한다. 각 폭은 독립된 세계처럼 보이지만, 열 폭이 함께 서 있을 때 하나의 사유 체계를 이룬다. 책과 문방구, 도자와 화병, 작은 기물 하나까지도 제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구성이 아니라 지식의 윤리다. 색채는 절제되어 있으나 단조롭지 않다. 청색의 공간감은 깊이를 만들고, 목재의 갈색은 시간을 축적한다. 화려함보다 지속성을 택한 이 색의 선택은, 오래 두고 마주할 병풍이라는 매체의 본질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병풍은 장식이 아니라 공간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인상적인 지점은 ‘사람의 부재’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병풍에는 사람이 가득하다. 책을 읽는 이, 글을 쓰는 이, 사유하
K-민화 강경희 기자 | 이 k-그라피 작품의 첫 문장은 선언에 가깝다. 「청하淸河를 읽다. 」, 맑음은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성파 작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 가능성은 조건이 아니라 태도이며, 세상과 관계 맺는 하나의 방식임을 글과 획으로 증명해 보인다. “사람은 맑은 사람에게 끌리고, 바람은 맑은 강물로 내려온다.” 작품 속 이 문장은 미문美文이기 이전에 삶의 법칙처럼 읽힌다. 계산과 소음이 가득한 시대일수록, 사람은 더욱 맑은 곳을 향해 이동한다. 권력이나 요란한 언어가 아니라, 스스로 흐르며 낮아지는 존재에게 마음은 끌린다. 성파의 글씨는 바로 그 ‘낮아짐의 힘’을 품고 있다. 이어서 작가는 말한다. “이익을 취함에 스스로 부끄럼 없으니 맑고 세상살이 물처럼 흐르니 이 또한 맑도다.” 여기서 ‘맑음’은 도덕적 완벽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끄러움을 아는 감각, 그리고 집착하지 않고 흘러가는 태도가 맑음을 만든다고 말한다. 이 문장은 오늘의 사회를 향한 조용하지만 분명한 질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취하면서도 부끄럽지 않은가. 우리는 어디까지 흐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단에 병기된 한문 구절은 작품의 정신을 더욱 단단히 붙든다. 人濁爲引以淸心
K-민화 이존영 기자 | 민화에서 물고기는 늘 ‘과정’의 상징이었다. 아직 하늘을 날지 못하지만, 이미 하늘을 향해 몸을 틀고 있는 존재이다. 정선영 작가의 '금입은어변성령도'은 그 결정적 순간을 원형의 우주 속에 봉인한다. 검은 바탕 위에 금빛으로 떠오른 원은 경계이자 약속이다. 이 원 안에서 물고기는 단순한 생물이 아니다. 파도를 가르는 몸짓은 수행의 반복을 닮았고, 비늘 하나하나는 시간의 층위를 이룬다. 물결은 쉼 없이 겹치며, 용문을 향한 의지는 흔들림 없이 축적된다. 여기서 ‘변變’은 돌연한 기적이 아니라 견딘 시간의 합이다. 주목할 것은 입에서 피어오르는 구름과 불꽃의 결이다. 아직 완전한 용의 형상은 아니지만, 이미 숨은 바뀌었다. 이는 결과를 앞서 보여주지 않는 민화의 미덕이다. 대신 가능성이 현실을 밀어 올리는 압력을 그린다. 그래서 이 그림의 긴장은 과장되지 않고, 도약은 소란스럽지 않다. 금입金入의 선택 역시 의미심장하다. 금은 부의 표식이 아니라, 인내가 끝내 획득한 광채다. 검은 바탕과의 대비는 ‘빛나기 위해 어둠이 필요하다’는 오래된 진실을 환기한다. 원형 구도는 시작과 끝을 지우며, 도약이 곧 순환임을 말한다. 오르는 자는 다시 흐
K-민화 이성준 기자 | 이 그림 앞에 서면 먼저 고요한 질서가 다가온다. 요란한 기교도, 감정을 앞세운 서사도 없다. 대신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오래된 약속처럼 견고한 균형이다. 조경선 작가의 '일월오봉도'는 ‘왕의 병풍’이라는 익숙한 틀을 빌려, 그보다 훨씬 근원적인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누가 중심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중심인가라는 질문이다. 일월오봉도는 본래 권력의 상징이었다. 해와 달, 다섯 봉우리, 소나무와 물이 질서는 왕을 우주의 중심에 놓기 위한 시각적 장치였다. 그러나 조경선의 화면에서 왕은 사라진다. 대신 남는 것은 질서 그 자체다. 위와 아래가 뒤집히고, 현실과 반영이 맞물리며, 하늘과 땅은 서로를 비춘다. 중심은 비어 있고, 그 자리에 우주의 리듬이 놓인다. 특히 수면水面을 가로지르는 반복의 파동은 인상적이다. 겹겹이 쌓인 물결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시간의 층위처럼 읽힌다. 흐르되 무너지지 않고, 반복되되 지루하지 않다. 이는 민화가 가진 가장 큰 미덕과 질서를 통한 안정을 현대적으로 번역한 결과다. 자연은 요동치지만, 그 요동 안에는 언제나 법칙이 있다. 색의 선택 또한 치밀하다. 짙은 남색의 하늘, 절제된 황토와 녹청, 그리
K-민화 이성준 기자 | k-민화에서 정원은 늘 말이 없는 장소였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는 삶의 원칙이 숨 쉬고 있었다. 김건하 작가의 ‘화정도’는 그 오래된 침묵을 다시 불러낸다. 이 그림 속 정원에는 위계가 없다. 당근과 가지가 꽃보다 낮지 않고, 국화와 작약이 채소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 나비와 곤충은 장식처럼 머무르지 않고, 순환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이는 질서가 없는 세계가 아니라, 서열이 필요 없는 세계다. 민화는 원래 삶의 그림이었다. 김건하는 그 사실을 과장하지 않는다. 상서도, 길상도라는 이름으로 덧칠된 해석을 걷어내고, 생활의 본래 자리로 그림을 되돌린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눈을 압도하는 화려함 대신, 마음을 붙드는 균형이 있다. 당근은 땅속에서 자라난다. 보이지 않는 시간 동안 뿌리를 키운 뒤에야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낸다. 가지는 소리 없이 열매를 맺고, 꽃은 피되 스스로를 자랑하지 않는다. 김건하 작가의 화정도는 이 평범한 존재들의 태도를 통해 말한다. 삶의 중심은 늘 조용한 곳에 있다고. 그 위를 오가는 나비와 곤충은 잠시 머물다 떠난다. 그러나 그 짧은 체류가 있어 정원은 살아 움직인다. 먹고사는 문제와 아름다움은 이
K-민화 이성준 기자 | 우리는 묻지 않는다. 이것이 글씨인가, 그림인가를. 우리는 선언한다. 이것은 문화다. 1. K는 국기(國旗)다. K는 알파벳의 한 글자가 아니다. K는 한국이라는 시간의 축적이며, 역사·정신·손의 기억이 응축된 상징이다. K는 더 이상 수식어가 아니다. K는 중심이며, 출발점이며, 세계와 마주하는 한국의 얼굴이다. 우리는 K를 앞에 둔다. 그것은 자부심이 아니라 책임이기 때문이다. Graphy는 언어다. Graphy는 쓰는 행위가 아니다. Graphy는 사유가 선으로 드러나는 방식이다. 문자 이전의 선, 말보다 먼저 태어난 형상, 인간이 생각을 남겨온 가장 오래된 언어, 그리고 Graphy는 기록이 아니라 표현이며, 정보가 아니라 존재의 흔적이다. K-Graphy는 문화 선언이다. K-Graphy는 장르가 아니다. K-Graphy는 기법이 아니다. K-Graphy는 스타일이 아니다. K-Graphy는 한국적 사유와 손의 언어가 결합된 문화 선언이다. 우리는 글과 그림을 나누지 않는다. 우리는 경계를 묻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이 선에 정신이 있는가. 이 획에 시대가 담겨 있는가. K-그라피는 모두를 포괄한다. 대나무 붓으로 쓰는 죽
K-민화 이존영 기자 | 연꽃은 언제나 말이 적은 상징이었다. 진흙에서 피어나되 진흙을 말하지 않고, 물 위에 서되 물을 가르지 않는다. 정선영 작가의 '연화도'는 이 연꽃의 태도를 그림 전체의 호흡으로 확장한 작품이다. 이 그림에서 연꽃은 주인공이지만, 결코 앞에 나서지 않는다. 그저 자기 자리에 서서 계절을 건너는 존재로 그려진다. 작품의 화면을 가득 채운 연잎은 겹겹이 포개지며 숲처럼 서 있다. 크고 작은 잎들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위로 치솟은 줄기는 경쟁하지 않고, 물 위의 수면은 흔들리되 요란하지 않다. 이 질서는 인위적으로 배치된 조화가 아니라, 오래 지켜본 자연의 리듬에서 비롯된 것이다. 연꽃 사이를 건너는 시간으로 정선영 작가의 '연화도'에서 중요한 것은 꽃의 만개가 아니라 과정이다. 봉오리는 아직 열리지 않았고, 이미 진 꽃도 있다. 잎 아래에서는 물새가 쉬고, 하늘에서는 새가 지나간다. 모든 것은 동시에 완성되지 않는다. 이 그림은 그 사실을 서두르지 않고 보여준다. 연꽃은 불교적 상징으로 자주 해석되지만, 이 작품은 교리보다 생활의 감각에 가깝다. 깨달음의 표식이 아니라, 오늘을 견디는 방식에 대한 은유다. 연잎 위에 고인 물